지난 1930년대 국민소득계정을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지표인 국내총생산(GDP)는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활용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군림해왔다. 1970년 이후 과도한 성장을 부추겨 환경을 파괴하고 건강이나 즐거움 등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은 측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아왔지만 경제 성장을 측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금껏 최고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부유한 나라일수록 의료 수준이 높고 국민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 질병의 우려가 낮고 쾌적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경제 성장이 거듭되면 가난한 나라의 국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사실일까.

 

*GDP는 틀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박형준, 동녘.

 

가난한 나라가 자원 채굴을 허용하면 GDP는 상승하겠지만 그 이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면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국내 자산과 국민의 부는 결과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일인당 GDP가 증가하고 있는데도 기대수명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 미국에서도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일인당 GDP가 꾸준히 증가했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질 소득은 계속 줄어들었다. 소득은 증가하지만 소득 불평등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경제성과에 대한 모순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회 어딘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GDP가 증가해도 국민 개개인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현재의 경제 성장 측정 방식은 ‘목적을 잃은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 환경보존, 자원 지속성 등 통합적으로 보면 GDP 지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 적절한 규제 없이 환경 훼손이 심한 광산개발권을 저가의 사용료를 받고 허가한다면, GDP는 증가하겠지만 국민들의 복지는 저하된다. 또 어떤 나라가 재화를 소비하는 대신 여가를 선용하면서 지식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여 보겠다고 하면 지금의 성과 측정 방식은 ‘성장’이라는 성적표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믿어온 이 지표는 세계 경제를 뒤흔든 이번 위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위기 직전에 GDP를 기준으로 나타난 높은 성과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GDP는 틀렸다>는 2008년 초 설립된 ‘경제 실적과 사회 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에 소속 세계적 석학들이 사회 진보를 당기면서 ‘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나가는 보고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 모두의 운명을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곧 정치라는 기본 상식을 바탕으로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위원회는 GDP가 가지는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회 발전을 더 잘 나타낼 지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추가 정보를 고려하면서 대안이 될 측정 수단들의 타당성을 검토해 나갔다.

 

위원회는 우선 GDP를 보는 세계의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 세 개의 그룹을 조직했다. 첫 번째 조직은 국민소득계정에 관련된 사안들에 초점을 맞춰 정부가 개방경제를 조정하고, 방어적 지출을 다루고, 정부 부분의 산출을 측정하는 문제 등을 다루는 방식을 다뤘다. 두 번째 조직은 ‘삶의 질’을 다루는 방식, 세 번째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태도 등을 문제삼았다. 또 이 세 가지 그룹을 관통하는 ‘분배’의 문제는 세 그룹이 모두 빠뜨리지 않고 상이한 상황들 속에서도 간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경제 지수를 측정할 새로운 지표를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세계를 위협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국이 전국민인민대표대회에서 GDP 성장률 하향 조정에 합의한 것도 부탄이 국민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태국도 이런 지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한국에서 열린 ‘제3차 OECD 세계포럼’에서도 여러 참석자들은 개선된 사회발전 측정 지표가 단순히 사회적 진보를 도식화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삶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져만 가는데 무역 흑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이것을 공표하는 데만 열중인 우리나라 정부의 모습과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그동안 높은 GDP 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식 모델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가계나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부채의 급속한 증가도 따라가게 됐다. 계량과 체감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침식되었고 그에 따라 대중적인 핵심 사안들을 처리하는 정부의 능력도 함께 약화돼 갔다. 즉 결함이 있는 편향된 통계가 우리를 그릇된 추론으로 인도한 것이다.

 

이 책은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 정책 입안자들, 관련 학계, 시민사회 조직, 나아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모든 대중들에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성장을 앞당기는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지데일리/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