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핵재앙 이후 방사능 공포는 세계 각지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12일 독일에서는 약 6만 명의 시위대가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발전소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하며 슈투트가르트에 모여 45킬로미터의 인간띠를 만들었고, 전국적으로 11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이어 3월26일엔 독일 반핵운동 사상 최대 인파인 25만 명이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에 모여 핵에너지 추방을 외쳤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태 직후 노후한 7기의 핵발전소 가동중지를 선언했지만, 독일 시민들은 가동 중인 나머지 10기도 당장 폐쇄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시민들의 거센 반핵운동에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수명연장을 단행했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후 성직자, 대학교수를 비롯한 학계, 관련업계 대표와 원로 정치인을 참여시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는 독일 정부에 원전 완전 포기와 함께 10년 내에 원전 폐쇄 일정을 발표할 것을 권고했다.

 

*평화만들기 101, 메리 와인 애슈포드 외, 추미란, 동녘

 

독일 정부는 이를 토대로 원자력 발전 계획을 풍력발전소나 천연가스발전소 등 재생에너지 위주로 개편할 방침이며, 위원회는 독일이 향후 10년 내로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중단할 것을 결의한 보고서를 메르켈 총리에게 전달했다. 이런 시민들의 작은 평화운동이 과연 원전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은 지난 30일 결실을 맺었다. 메르켈 총리는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2022년까지 영구히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근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10년간의 긴 도피 생활 끝에 미국의 군사작전으로 사살됐다. 백악관은 빈라덴 사살 직후, 빈라덴이 총격전 과정에서 사망했으며, 빈라덴이 아내를 인간방패로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빈라덴은 사살 당시 비무장 상태였고 빈라덴이 자신의 부인을 인간방패로 활용했다는 미국 당국의 발표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애초에 미국이 생포가 아닌 사살을 위한 작전을 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문제는 국제법 위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빈라덴 사살은 9·11 사태로 응어리진 미국인들의 보복 심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켰을지는 모르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세계 평화와 안전에 오히려 해를 끼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더 큰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의와 세계 평화라는 구실로 빈라덴을 법정에 세우지 않고 ‘즉결처형’했다. 이는 정말로 ‘정의’를 위한 일이며, 세계 평화를 가져올까.

 

전쟁방지국제의사협회(IPPNW)의 회장을 지낸 메리 와인 애슈포드는 오늘날 우리가 만성적인 폭력에 노출돼 있고, 그래서 세계에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냉전이 종결된 1991년 이후로 최소 1000명이 목숨을 잃는 대규모 전쟁이나 학살행위의 수가 과거에 비해 90퍼센트나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애슈포드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 있는 인간안보연구소가 2005년~2006년까지 연구한 보고서에 의거해 1991년 이후 총 100여 곳의 전쟁이 종결됐고, 또 그 시기에 61곳의 독재정치가 비폭력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2008년에는 테러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40퍼센트나 감소했고, 전쟁 희생자 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것이다.

 

애슈포드는 “인류는 무장충돌을 통한 문제 해결을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과연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일까.

 

<평화만들기 101>에 나오는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 책을 보내고, 국제법을 지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배지를 달고, 외로운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고, 차 범퍼에 ‘핵무기 사절’이라는 스티커를 달고,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식에 참여하고, 전쟁 미화를 거부하고, 평화 방송국을 설립하고, 전쟁을 지지하는 회사나 은행에 투자하지 않으며,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에게는 핵무기를 없애달라는 편지를 쓰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올리브 나무를 심고, 감옥 수감자들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초를 밝혀 기도하고, 전쟁 반대 시위를 하고, 지뢰를 없애고 평화 지대를 선언하며, 평화를 노래하고 평화를 꿈꾼다.

 

이 책의 지은이 가운데 하나인 애슈포드는 이러한 세계 시민들의 작은 노력과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활동이 평화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많은 조사를 해본 결과, 사람들은 갈등 해결을 위해 평화적인 수단을 최우선적으로 강구하고 있고, 세계는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이 책에는 미국이 빈라덴을 사살한 것처럼 폭력에 또 다른 폭력으로 대항한 ‘그들만의 평화’가 아닌, 풀뿌리 같은 작은 시민운동으로 원전의 재앙을 막으려고 한 독일의 예와 같이 비폭력저항으로 평화를 이끈 세계 시민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국제 시민 단체나 비정부기구들은 르완다 사태를 예로 들면서, 국제 사회가 심각한 민간인 대학살을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 대학살, 자연재해를 가장한 인재, 집단폭력 사태 등이 터지면 대부분의 방송과 언론은 “피는 발행부수를 올린다”라는 언론사의 오랜 방식으로 자극적인 사실보도와 사태의 중심인물들을 반복해서 내보낸다. 이러한 보도를 접한 우리는, 세상은 암울하다고 걱정할 뿐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고 자원과 자본을 둘러싼 이권 싸움이 더 크게 작용할 때, 시민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국제 정치의 움직임을 제대로 견제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뒷짐 지고 방관만 해야 할까.

 

애슈포드와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지은이인 기 도운시는 20년 넘게 현장에서 평화운동을 해온 활동가다. 이들은 지금 세상에는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두 개의 세력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고 본다. 그 중 하나는 무력, 핵무기, 군산 복합체를 통한 군사주의를 중시하고, 법의 힘보다는 힘의 법칙을 우선시하면서, 세계 지배를 노리고 있는 ‘미국’이다.

 

세계시민 vs 초강대국

 

미국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자원 경쟁을 벌이고,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과 인간의 권력욕을 부추기며 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구 환경은 파괴됐다. 나아가 인류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또 다른 세력 하나는 이에 반대해 여기저기서 분연히 일어난 시민 단체들과 세계 여론이다. 이들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통합된 의지를 관철시키며, 전쟁 없는 세상, 관용과 이해가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이 세계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계 평화를 함께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101가지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평화의 힘과 시민의 힘을 키우기 위한 101가지의 방안은 실현 가능한 것들이고 우리가 꼭 새겨들어야할 메시지다.

 

개인, 여성, 아이와 청소년, 학교와 교육자, 활동가, 종교조직, 미디어, 전문가, 사업가와 노동자, 도시, 국가, 국제사회, 갈등 지역 내 국가, 함께 행동하는 국가 등 우리 모두를 위한 101가지의 평화 만들기를 위한 실천 방안이 잘 제시돼 있는 이 책은 개인과 단체들이 인류 평화에 기여한 방법과 그 결과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로써 평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지평까지를 넓혀주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