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지만 폭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의 공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이 비참한 공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종 시장의 거품 붕괴, 대규모 실업, 비정규직의 양산, 물가 상승, 임금 저하, 빈곤의 증가와 빈부 격차의 심화, 국가 간 무역 전쟁과 환율 전쟁….

 

정부와 언론 등이 ‘경제위기’라고 표현하는 오늘날의 이 현상들을 어떻게 바라보며 이해해야 할까. 국내 대표적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는 이를 ‘공황’ 국면으로 진단한다. 회복으로 향할 수도 있는 갈림길을 ‘위기’ 국면이라고 정의할 때, 세계경제는 ‘위기’를 이미 지나쳐 ‘공황’에 들어선 것이다.

 

*세계대공황, 김수행, 돌베개

 

흔히 1930년대에 겪고 넘어갔다고 여겨지는 대공황을 실제로 세계경제는 1970년대에 다시 한 번 겪은 바 있고, 이제는 세 번째로 경험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대공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야 극복되면서 혼합경제 체제를 낳았던 첫 번째 세계대공황과, 석유파동으로 촉발돼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야기한 두 번째 세계대공황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2008년부터 시작된 이번 제3차 세계대공황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분석하고, 더 이상은 이 부조리를 반복하지 않을 새로운 사회로 나갈 길을 찾고 있다.

 

✔ 2008년에 시작된 이번의 세계대공황은 20~21세기에 나타난 세 번째 대공황이며, 현실적으로는 기존의 자본축적 방식과 국내의 계급 관계 및 세계 질서를 재편하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정부와 기업에 저항하기보다는 주식에 투자하여 어떻게든 이 공황을 지나가려고 마음먹고 있고, 청년들은 자꾸 줄어드는 일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며,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일반 시민들의 성향이 여전히 우파적이라고 속단하여 정부나 여당과 거의 대동소이한 정책과 사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3차 세계대공황을 이전 두 차례의 대공황과 구별 짓게 하는 것은 ‘금융’이라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즉 이번 세계대공황은 실물경제에 의한 공황이 아닌, 금융기업에 의한 사상누각의 현대 경제체제가 빚어낸 공황이다.

 

공황의 시작은 미국 주택시장 거품의 붕괴였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생겨난 거대한 유휴화폐자본, 즉 ‘노는 돈’은 투기자금으로 전환돼 주택이나 IT 등 각 부문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며 손쉽게 부자들의 배를 불렸고,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친기업이라는 구호 아래 계속해서 저하되면서 그 자리는 거대한 ‘신용-빚’으로 메꿔지도록 권장됐다.

 

그러면서 대출 받을 필요가 절실해진 서민들의 처지를 이용해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행해진 주택 담보 대출, 그러한 비우량 모기지 대출을 토대로 만들어진 비우량 모기지 증권, 다시 그 증권을 이용해 발명된 채권 파산 보험 등이 버젓한 자산으로 팔려나가는 금융기법에 의해 세계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취약한 기반 위에서 거미줄처럼 얽히게 됐다. 비우량 모기지 증권으로 우량 채무 담보 증권을 만들어낸 화려한 금융 연금술은 사실상 ‘납을 금으로 만드는’ 사기에 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은이는 “새로운 경제”라는 찬사를 받으며 거듭돼 온 현대 자본주의의 ‘성장’이란 이렇게 거품 속의 자산 상승효과와 저소득층에 대한 수탈적인 금융 대출에 의해 지탱돼 온 것임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금융시장 붕괴의 시작을 알린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금융피라미드의 밑바닥을 받치고 있던 저소득층 비우량 대출자들이 대출 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되자 커질 대로 커진 거품이 단숨에 꺼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와 함께 세계금융공황이 본격화된 것이다.

 

“자본주의를 타도하지 않는 한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세계대공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한 마르크스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시장은 내버려두어야 한다”거나 “시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무언가가 개입했기 때문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자의 눈으로는 공황의 발생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지은이는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을 토대로, 공황이란 처음부터 자본주의 경제가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증명한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돼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논리로 공황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윤의 창출과 극대화를 위해 노동을 착취하고, 비용 절감과 노동운동 세력의 약화를 위해 ‘일부러’ 실업자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 이윤 획득 노력은 결국 대중의 소비 능력 저하를 불러와 사회 전체를 공황으로 몰아넣게 되고, 그 결과 생산수단이 남아도는데도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야릇한 국면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가계와 기업·정부의 채무와 거품 키우기로 해결해 보려 한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양극화를 계속해서 심화시켰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논증한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이 한층 복잡 치밀해진 현대 금융경제 체제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될 수 있음을 지은이는 밝혀낸다.

 

지은이는 그동안 자유방임을 외치며 거대한 이익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향유해 온 금융귀족들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스스로 키워낸 거대한 손실을 메워야 한다며 이들이 요구하는 구제금융은 모두 ‘국민의 혈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복지 정책이 국가 채무를 키워 자산 위험도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논리로 사회 서비스를 축소하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일은 이들과 이해를 함께하는 각국의 정부가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고 있다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되살려지고 있는 금융자본의 저속한 행태와 이를 지원하는 신자유주의 정부가 주도하는 세계경제 속에서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만 있다.

 

그러나 이를 ‘타도’할 노동자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들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지은이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지 않고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겐 '남 이야기'?

 

최근 일어난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촉발된 제2금융권의 붕괴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부실과 특혜는 지은이가 말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서민의 돈을 ‘제돈’인양 제 마음대로 휘둘러온 금융귀족과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기관이 한통속이 돼 돌아가는 요지경을 심심치 않게 뉴스로 접하고 있다. 아울러 그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음도 목도하고 있다.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왜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걸까. ‘실종신고’라도 내야만 한단 말인가.

 

결국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려 한다. 리먼브라더스와 JP모건스와 같은 낯선 이름들이 뉴스에서 흘러나올 때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경제 상황을 ‘제3차 세계대공황’이라고 주장하는 지은이는 세계대공황의 역사와 최근 금융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대공황의 근거를 분석하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지 않는 한 공황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그의 희망과 전망을 제시하면서, “이대로는 계속할 수 없다”는 공감을 끌어내며 자신이 내놓는 ‘새로운 사회상’에 각자의 꿈을 덧붙여 실현시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