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른다.” - 오스카 와일드

 

오로지 가격으로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매기는 시장 주도적 관점은 이미 실패했는데도 왜 경제, 식량,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파괴적 결과를 낳으며 망가진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경제학의 배신, 라즈 파텔, 제현주, 북돋움

 

<경제학의 배신>은 ‘가격’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하면서 정통 경제학 이론,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뿌리째 뒤흔든다. 이는 오늘날 경제와 생태의 위기를 이겨내고 지속가능한 경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 진정한 가치는 열망, 욕망, 허영심을 충족시킬 능력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에서 온다. 이것을 마음속에 새겨둔다면 광고업자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설득해대는, 겉만 번지르르한 물건과 장신구, 호화스러운 차, 최신 휴대폰이나 신발은 한 줌의 재처럼 허망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경제학자이자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옹호하는 활동가인 지은이 라즈 파텔은 이 책에서 경제 붕괴의 혼돈을 보여주며 그 과정과 원인을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없게끔 부추긴 자유시장 경제 모델의 결함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우리는 왜 실질적인 변화 없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성향을 갖게 됐는지, 시장이 정하는 ‘가격’으로 세계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일깨워 준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는 ‘대항운동’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지금의 세계로 이끈 잘못된 경로를 바로잡을 힘을 갖게 되는지 제시한다.

 

지은이는 호모에코노미쿠스 개념을 만든 19세기 정치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부터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Gary Becker)를 아우르는 여러 학자의 저작에서 시장경제의 뿌리를 추적한다. 이 학자들은 시장의 통치가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 장본인들이다. 지은이는 베커와 같은 학자들의 연구가 힘 있는 자들, 특히 기업을 옹호하는 정책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조소를 보낸다.

 

지은이는 우리가 호모에코노미쿠스의 협소한 관점을 넘어 폭넓고 관대하며 희망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행복은 행복 자체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구현해나감으로써 얻게 될 자유가 더 큰 행복을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자유시장에 대한 환상을 ‘안톤의 실명(Anton's Blindness)’에 비유하는데, 이는 두뇌 손상 이후 일어날 수 있는 희귀한 의학적 증상으로, 시력을 잃고서도 자신이 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질병인식불능증의 하나다. 자유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놓아두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관리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하고 시장에 집착하는 사람들. 그들 역시 눈이 멀었으면서도 볼 수 있는 척 이야기를 꾸며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안톤의 실명 환자가 온전한 삶을 살려면 머릿속에서 보이는 환상을 믿지 않는 법, 다른 감각과 다른 사람들에 의존하면서 시각 없이 사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파텔은 오늘날의 경제와 사회 문제에도 이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물을 평가할 때 화폐적 가치 측면에서만 사고하도록 사회화됐다. 그러나 가격이 올바른 신호를 전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세계의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200달러짜리 햄버거’의 예를 들어 가격에 근거한 경제학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맥도날드 빅맥은 한 개에 4달러에 팔지만 사회적 생태적 비용을 포함하면 가격이 200달러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쇠고기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보조금(2006년 46억 달러)을 받는 옥수수로 사육한다. 또 고작 연평균 1만 5000달러(약 1700만원)의 낮은 임금을 받는 패스트푸드업계 상근 노동자에 대한 의료 및 식료품 지원금, 소 사육을 위한 환경 파괴 비용, 과도한 육류 소비로 인한 공공 보건 비용 등을 포함한 비용이다.

 

결국 기업은 사회 전체가 감당할 비용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다양한 보조금까지 받고 있으며, 미국의 소비자는 자신이 낸 세금으로 값싼 햄버거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 경제학에서 말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가격 뒤에 숨은 비용을 수량화하는 것은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외부효과에 대한 경제학적 해결에 찬성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관리돼야만 하는 부분’을 지적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도입 중인 ‘탄소 배출권 총량규제 및 거래제(cap-and-trade)’를 허울뿐이라고 비판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배출권 거래제는 세계 경제를 벼랑으로 내몬 21세기 금융상품의 기법과 ‘DNA’를 공유한다. 이 정책은 대기를 사유재산화해 ‘오염시킬 권리’를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결국에는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배출권 거래제가 이산화탄소 감소에 기여한 것은 거래(trade)라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가 아니라 ‘규제와 관리(cap)’에 의해 달성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파텔은 현재의 경제 위기는 세계적으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식량과 환경까지 모든 것에 적용되고 있으며, 전 지구적 기후변화를 막아야 할 마지막 순간과 겹쳐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세상과 대강이나마 비슷한 세상'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경고다.

 

✔ 인간은 유전적으로 이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협력하고 교류하며,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며, 서로 사랑하고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게끔 진화되었다. 호모에코노미쿠스와 달리 사람들은 관용, 공정함, 신뢰, 이타주의, 호혜성을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긴다. 호모에코노미쿠스는 이런 미덕의 ‘효용’에만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점차 밝혀지고 있듯이, 관대함과 베풂, 비이기심의 본질적 가치를 인식할 줄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의 질, 바로 복지를 극대화하는 핵심이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가치’와 ‘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꿈꿀 것을 주문한다. 여기서 시장과 사유재산권은 평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민주적 고려를 위한 수단이다. 그는 사물의 실제 가치가 ‘욕구나 욕망’이 아닌 ‘복지를 위한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에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최근 연구에서 밝혀진 대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심뿐 아니라 이타심과 공정성에 대한 욕구 역시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