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태어나면 상자에 담긴다.

그리고는 상자 속에서 살기 위해 집으로 간다.

빈 상자를 체크하면서 공부한다.

상자 속의 직장에 가서는 칸막이 상자에 앉는다.

상자 속 가게로 차를 타고 가서 상자에 담긴 식품을 산다.

상자 속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상자 안에 앉는다.

그들은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논한다.

그리고 죽을 때 상자에 담긴다.

유클리드적이고 기하학적으로 매끈한 모든 상자들.

 

<블랙스완과 함께 가라>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의 사지를 늘리거나 잘라내어 침대 길이에 맞춘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로 시작한다.

 

*블랙스완과 함께 가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배현, 동녘사이언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티카 코리달루스에 조그만 땅을 가진 잔인한 영주였다. 그곳은 아테네와 엘레우시스의 중간에 있는 도시로서 이상한 의식이 거행되는 곳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괴이한 환대를 고안했다. 그는 여행자를 납치하여 푸짐한 저녁을 먹이고는 특별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묵으라고 청한다. 그 침대는 여행자에게 완벽히 맞아야 했다. 키가 너무 큰 자들은 날카로운 도끼로 다리를 잘렸다. 키가 너무 작은 자들은 사지를 늘여야 했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인과응보를 추구하던 프로크루스테스는 결국 자기가 판 함정에 빠졌다.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용감한 테세우스가 그곳을 지나가게 됐다. 테세우스는 관례적인 만찬을 끝내고는 프로크루스테스를 그의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의례적인 완벽성에 맞추기 위해 프로크루스테스의 목을 잘라버렸다. 테세우스는 받은 대로 되갚아주는 헤라클레스의 방법을 그대로 따랐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아포리즘은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관한 것이다. 지식의 한계, 우리가 보지 않는 것,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의 한계에 부딪힌 우리 인간은 삶과 세계를 산뜻하게 상품화한 아이디어, 환원적 범주, 명확한 어휘, 미리 포장된 이야기로 압축해 긴장을 해소해버린다.

 

우리는 이러한 ‘뒤집어 맞추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들지만,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객의 사지를 외과적으로 바꿔 버리면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재단사와 유사하다. 가령, 우리가 어린 학생들에게 맞도록 커리큘럼을 바꾸는 게 아니라, 커리큘럼에 어린 학생들을 맞추기 위해 아이들의 두뇌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포리즘 형태로 들려주는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보는 현대문명의 오만을 가리킨다. 인간이 기술에 만족하고, 현실이 경제 모델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탓하며, 약을 팔기 위해 질병을 고안하고, 교실에서 검증되는 것만을 지성이라고 부르며, 고용이 노예제가 아니라고 종업원을 납득시키는 것이 바로 현대문명의 오만이다.

 

백 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결코 읽지 말라.

천 년 동안 먹지 않은 열매는 결코 먹지 말라.

사천 년 동안 마시지 않은 음료는 결코 마시지 말라.

마흔 넘긴 보통 사람과는 이야기하지 말라.

영웅기질이 없는 자는 서른부터 죽어간다.

 

날카롭게 허를 찌르면서도 흥미로운 이 잠언집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갖고 살았지만 결코 깨닫지 못했던 자기기만을 폭로한다. 게다가 지은이는 용기ㆍ우아함ㆍ박식함과 같은 고전 가치를 헛똑똑함ㆍ속물근성ㆍ불성실함 같은 현대 질병과 대비해 인간의 미망을 꿰뚫는다.

 

이 책은 지은이가 지금까지 쓴 ‘블랙스완’과 관련한 책들의 아이디어를 압축한 것으로, 아포리즘, 즉 잠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신랄하고 직설적인 그만의 아포리즘 묶음이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