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이 상상 이상의 참혹한 상황일지라도 이 고귀한 영혼들은 천진난만한 미소와 웃음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

 

한편이라고 말해ㅣ우웸 아크판 지음ㅣ 김명신 옮김ㅣ은행나무 펴냄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 인간의 비루한 삶, 역사적 사건 속 공포 등 ≪한편이라고 말해≫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다. 특히 그 속에서 기지와 끈기를 발휘하며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돌파해나가는 어린 주인공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몇몇 나라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굶주림, 아동 학대, 종교·인종 분쟁 등의 문제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어린아이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풀어낸 다섯 편의 중·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이다. 각 편마다 주인공과 배경 나라, 사건이 다르지만 모두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과 유머, 간절한 희망 뒤에 숨겨진 깊은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소설 <크리스마스 성찬>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거리의 판잣집 속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여덟 식구의 모습을 그린 단편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이들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무료로 나누어주는 구호 물품을 받고 동냥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소설의 화자인 여덟 살 소년 지가나에게 필요한 건 학교에 다니기 위한 수업료와 책들을 살 돈뿐이다. 열두 살밖에 안 된 큰누나 마이샤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동생을 다시 학교에 다니게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백인들을 상대로 몸을 판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누나가 마지막으로 마련한 ‘크리스마스 성찬’을 먹는 가족을 뒤로 하고 도망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자신의 아이나 조카를 파는 일은 다른 아이들을 파는 일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두 번째 소설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는 부모가 에이즈에 걸려 베냉과 나이지리아의 국경 지대에서 호객꾼으로 일하는 삼촌의 집에 얹혀살게 된 어린 두 남매의 이야기다. 열 살 소년 코칙파와 다섯 살 여동생 예와는 어느 날 삼촌에게 오토바이가 생긴 것을 보고 드디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함께 행복해한다. 그렇지만 삼촌이 그것을 받고 자신들을 어린이 인신매매범들에게 팔아넘기려 한 사실을 알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에 대비된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세 번째 소설 <이건 무슨 언어지?>는 에티오피아의 이슬람 폭동을 배경으로, 어른들 사이의 적대 속에 단짝 친구인 어린 두 소녀가 이별해야 하는 모습을 동화처럼 따스하게 그린다.

 

네 번째 소설 <럭셔리 영구차>는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시작된 이슬람 폭동으로 인해 남쪽으로 피난해가는 그리스도교도들로 가득 찬 ‘럭셔리 버스’ 안에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아버지가 사는 남쪽으로 피신하려는 열여섯 살 무슬림 청년 주브릴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믿어온 이슬람교의 광신도들로부터 도주하게 된 배경이 회상을 통해 나온다. 피난민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종교, 인종 등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은 나이지리아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아프리카가 처한 문제들의 현실을 축소판처럼 보여준다. 종교간 갈등과 구원, 평범한 사람들도 어떻게 광포해질 수 있는지, 자신과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등 묵직한 주제들을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통해 천재적으로 그려낸다.

 

“알라신이시여, 부디 제게 지혜를 주시어 이 버스의 그리스도교도들에게는 제가 정말 그들과 한편이라고 믿게 해주십시오.”

 

마지막 소설 <부모님의 침실>은 르완다의 역사를 뒤흔든 후투족과 투치족 간 참혹한 대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 단편이다. 주인공인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풀어낸 이 가족의 이야기는 부모님의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끔찍한 참사로 이어진다.그 절망의 장면을 소녀의 눈을 통해 담아낸다. 극도의 충격을 이겨내려 애쓰며, 엄마의 말을 따라 어린 남동생과 함께 한 줄기 희망을 찾아 나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와 ‘편’이 다른 타인에 대한 관용, 극한의 상황 속에서 광포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깨우쳐주며 비폭력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이 보다 안전한 세상 속에 살아가도록 하고 싶었다는 지은이 우웸 아크판의 열망처럼, 이 책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출처=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