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과학 기술 문화 전문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처음 7년 동안 그 잡지의 편집장을 맡았던 케빈 켈리. 그는 10년 동안 싸구려 운동화와 낡은 청바지 차림으로 아시아 오지를 여행했으며,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즐겨 모는 등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1960년대 말엔 작은 농가에 공동체를 꾸렸던 히피 운동에 참여했으며 아미시 파와도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처럼 기술 외면자에 가깝던 케빈 켈리가 기술 옹호자로 180도 전환했다. 그는 <기술의 충격>에서 수렵, 농경 생활을 하던 원시 시대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고도로 발달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술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 살핀다.

 

이미지_기술의 충격, 케빈 켈러, 이한음, 민음사.jpg *기술의 충격, 케빈 켈러, 이한음, 민음사

 

기술과 인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가전제품처럼 눈에 보이는 기술뿐만 아니라 농업, 도시, 문학 작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술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원시 수렵 시대부터 기술은 존재해 왔지만,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해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오늘날,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이런 고민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자동차를 몰기보다는 자전거를 몰며, PDA나 스마트폰도 쓰지 않고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어떻게 기술을 옹호하는 입장이 된 걸까.

 

컴퓨터가 우리 삶의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 중심부에 있었던 지은이는 기술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이 깨달음이 이 책의 결론까지 이끌어 낸 강력한 추동력이 됐다. 즉 기술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지 라는 더 중요한 사항을 발견할 가능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기술을 옹호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석기 시대에 인류의 조상이 수렵채집 기술과 언어라는 기술을 다뤘다는 사실을 짚고, 기술이 차츰 소프트웨어, 디자인, 매체 같은 탈물질화 된 무형의 형태로 확장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인공물, 즉 우리가 만들어 낸 가장 큰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의 발달 과정을 분석해 진보와 발전이 이뤄지는 양상을 살핀다.

 

생명의 진화와 기술의 진화를 비교하기도 한다. 기술은 생물학적 진화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추진해 온 자기 조직화 과정을 증폭하고 확대하고 가속시킨다.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 사이에 우연히 ‘동시 발견’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J. K. 롤링은 1997년 해당 소설을 발표한 뒤, 13년 전에 안경을 쓰고 머글에 둘러싸인 고아 소년 마법사 래리 포터가 나오는 아동책을 발표한 작가에게 소송을 당한다. 1994년에 나온 <13번 플랫폼의 비밀>이라는 작품도 있다. 이 책에서 기차역 플랫폼은 마법의 지하세계로 가는 출입구다. J. K. 롤링이 그 책들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고 볼 타당한 이유는 많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다.

 

지은이는 기술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정반대되는 사례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수십 명의 기술 애호 전문가들에게 폭탄을 터뜨려 그 가운데 세 명을 죽음으로 내몬 폭파범 시어도어 카진스키(유나바머), 그리고 유행하는 신기술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집단인 아미시 파가 자세히 소개된다. 그는 기술이 결함을 지닌다는 유나바머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를 완전히 없애고자 했던 해결 방식에는 반기를 든다. 팽창하며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에서 얻은 이득은 기계가 완전히 배제된 대안이 주는 이득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즉 문명의 기계가 우리에게 더 많은 현실적인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좋은 가능성이 더 많은 좋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것"

 

기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피고 있는 지은이는, 기술은 생명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단언한다. 효율성, 기회, 창발성, 복잡성, 다양성, 전문화, 편재성, 자유, 상호 의존, 아름다움, 직감력, 구조, 진화 가능성이 증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기술은 팽창하면서 스스로 변화한다. 진화, 생명, 마음과 마찬가지로 무한 게임에 해당한다.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유한 게임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가 가능한 한 오래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게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모든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좋은 가능성이 더 많은 좋은 가능성을 생성하고, 그런 식으로 무한 게임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 우리와 함께 진화해 나가는 방식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기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기술이 지닌 이기적인 자율성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고 탄탄하다는 점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긍정적인 힘에 점점 더 감탄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더 찾아내도록 우리를 돕고 싶어 하는 기술의 본성을 이끌어내고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면서, 테크놀로지를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