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도심의 기능이 온통 마비됐다. 지난달 중순엔 11일 연속 강우로 50년 만의 최장 기록이 깨지더니, 불과 며칠이 지난 27일에는 100년 만에 서울 지역 하루 최고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우는 물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기상이변과 재난재해가 멈추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독일 대형 손해보험기업인 뮌헨리(Munich Re) 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6개월간 전 세계 자연재해 피해액은 2650억 달러(한화 약 279조)로, 이전까지의 역대 한해 피해액의 최고 기록까지 훌쩍 뛰어넘었다.

 

이미지_지구의 노래, 스테판 하딩, 박혜숙, 현암사.jpg *지구의 노래, 스테판 하딩, 박혜숙, 현암사

 

이러한 재난재해의 주범은 쓰나미와 토네이도만이 아니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 동유럽 세르비아에선 최고 기온이 45도를 넘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사상 최악의 가뭄을 맞은 동북 아프리카에서는 1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세계적인 생태교육기관인 슈마허 칼리지에서 과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생태학 박사인 스테판 하딩은 제임스 러브록의 동료 연구자로, 지구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입장을 제시한 그의 ‘가이아 이론’을 적극 받아들인다. 나아가 ‘가이아’ 인식을 통해 기계론적 방식과 효율에만 몰두한 현대과학의 병폐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대안적 과학 문명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데 도전한다.

 

스테판 하딩의 가이아 인식과 접근법엔 러브록과 사뭇 다른 점이 많다. 하딩은 특히, 지구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인간이 지구의 생명 활동을 전적으로 느끼고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하딩은 자신의 이러한 과학 이론과 방법론을 전체론적 과학(Holistic Science)으로 부르면서 <지구의 노래>를 통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지은이의 전체론적 과학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인식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면서 한편으론 전혀 새로운 과학적 비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 문명을 포함한 인류의 구성원들이 지구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구의 생명 활동에 동참할 방법을 성찰적으로 제시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지구를 ‘절망적인 지구’라고 말하면서, 지구의 온도가 지난 5500만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억 년 동안 지구에서 벌어진 다섯 번의 종의 ‘대멸종’과 비교해도 그 속도가 훨씬 빠른 종의 멸종이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앞에서 지은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안은 바로 ‘심층생태학’의 길이다.

 

✔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있는 가장 가까운 야외로 나간다. 잠시 동안 주위의 소리와 모습, 감촉, 냄새에 젖는다. 그 모든 자극이 우리를 감싼 살아 있는 지구의 의사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긴장을 완전히 풀고 이 메시지들을 흡수한다. 이제 천천히 거닐면서 주위의 다른 종들을 인식한다. 식물, 동물, 균류, 조류 또는 미생물을 인식한다. 각 종의 이름을 비롯한 생물학적 정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각 종을 살아 있는 존재, 각자의 고유한 본질적 특성을 발현하는 생명으로만 느낀다. 각 종이 어떤 소리를 내는가? 어떤 색과 모양과 질감을 나타내는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심층생태학이란 간단히 말해 ‘인간 내면과 생명체 지구와의 관계 회복’이며 ‘생명 공동체 일원으로서 인생 살기’라고 할 수 있다. ‘전체론적 과학’을 통해 지구 만물의 생명 활동의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그것의 끊임없이 순환을 통해서만 정상의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심층생태학’의 길을 통해 지구와 인류의 공생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지은이가 제시하는 비전인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분야는 꽤 광범위하며, 그 대상도 동물과 식물은 물론 공기와 구름을 비롯해 미생물과 균류에까지 이른다. 지은이는 균류를 관찰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균류의 비밀스러운 수고가 없으면 숲도 초원도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큰 동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균류가 없으면 지구의 육지 표면은 암석뿐일 것”이라고 단언한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넓은 시야의 통찰과 연구를 통해 지구 전체의 생명 활동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