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짝 과학자 주방에 가다> 제프 포터 지음, 김정희 옮김, 이마고 펴냄.


<지데일리 한주연기자> 가장 맛있는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괴짜 과학자, 주방에 가다>는 제목 그대로 ‘괴짜 과학자’가 쓴 요리책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지은이 제프 포터는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던 개인적 취미를 발전시켜 이 요리책을 쓰게 됐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괴짜다운 왕성한 과학적 호기심. 그는 식품공학자, 칼 전문가, 소믈리에, 특급 요리사를 직접 인터뷰하며 요리의 다양한 노하우를 배웠으며, 조리기구 사용법에서부터 주방 배치, 재료 선택과 보관법은 물론 첨단 기술을 이용한 요리법까지 철저히 연구했다.

 

지은이는 먹음직스러운 요란한 사진들로 위장을 자극하며 레시피를 무작정 따라하라고 유혹하지 않는다. 과학적 호기심으로 무장한 괴짜답게 그는 조리를 하는 동안 음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어디까지나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스테이크 굽기’는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근거다.

 

지은이는 우선 조리의 본질에 대해 “재료에 열을 가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맛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조리하는 동안 일어나는 세 가지 화학반응인 단백질 변성 반응, 메일라드 반응, 캐러멜화 반응과 열전달의 세 가지 방법인 전도, 대류, 복사, 심지어 음식에 존재하는 세균과 그 예방법까지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쇠고기의 단백질 중 미오신은 50℃에서 변성되고, 액틴은 65.5℃에서 변성된다는 사실,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55℃에서 죽으며, 맛과 향을 더해주는 메일라드 반응(갈변반응)은 154℃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등을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스테이크를 맛있게 구우려면, 스테이크의 내부온도가 미오신은 변성되면서 액틴은 변성되지 않는 지점, 그러나 식중독균으로부터 안전한 58~65.5℃에 이르러야 하며, 겉은 154℃ 이상으로 유지해 갈변반응이 일어나도록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를 만드는 과학적 방법이다.

 

주방에서 펼쳐지는 이색 실험

 

이 책은 ‘조리를 하는 동안 음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분자조리학(molecular gastronomy)과 연결된다. 1992년 프랑스의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창시한 이 신학문 분과의 목적이 바로 조리할 때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재료의 화학적 조성만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전통적인 식품공학과 달리, 과학지식을 조리과정에 적극적으로 응용한다는 점에서 분자조리학은 훨씬 더 실험적이고 창의적이다. 지은이가 직접 인터뷰한 에르베 티스에 따르면, 자신의 과학적 조리법들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엘불리’, 미국의 ‘앨리니아’, 영국의 ‘팻 덕’ 등 세계 최고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은 이제 전통적인 재료와 조리법에 얽매이지 않고, 분자조리학이 소개한 새로운 재료와 도구, 조리법을 적극 시도함으로써 오늘날 요리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현대요리(modernist cuisine), 고급요리(haute cuisine)라고 불리는 요식업계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 책에는 그런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해볼 수 있는 분자조리학의 재미있는 실험들이 소개돼 있다. CPU에다 달걀 프라이를 하고, 자동차 엔진에 소시지를 굽고, 식기세척기로 생선을 찌고, 다이너마이트로 스테이크를 연하게 하는 등 기상천외한 것에서부터, 액체질소나 드라이아이스로 순식간에 아이스크림 만들기, 단백질 접착제(트랜스글루타미나아제)를 사용해 서로 다른 고기 조각 이어붙이기 같은 신기한 것들, 전분·카라기난·한천·알긴산나트륨으로 젤 만들기를 비롯해 각종 식품첨가제(증점제, 유화제, 안정제 등)의 화학작용을 알려주는 유용한 것까지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