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쟁탈전> 조후 지음, 민들레 펴냄.


모든 문제는 그 문제 속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면 답도 보이게 마련. 특정 문제가 어떤 의도로,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를 파악하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이해되고 답도 보이게 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의 뿌리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문제가 발생된 근원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그리고 문제나 사건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당시로 돌아가, 당시의 시각으로 그것을 보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과 환경을 철저하게 배제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왜곡되기 쉬우며, 왜곡된 역사일 경우 우리가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서양사를 볼 때 오늘날의 유럽과 과거의 유럽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세계를 이끄는 선진 집단이라고 불리지만 과거, 18세기가 되기 전의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다가 미개하고 각성하지 못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세에 들어서도 유럽의 정치, 문화, 경제 중심은 발칸 반도와 에게해, 소아시아에 있었고 그나마도 동쪽으로부터 동양의 압박을 심하게 받았으며 이슬람의 포위에서 자유롭지도 않았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당시의 유럽은 거대한 세력인 중국과 이슬람에 치인 가난하고 미개한 지역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양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라는 거센 바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를 서양이 주도하고 있으니 그들의 역사인 서양사를 알아야 우리가 근대의 거센 바람을 뚫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지구 쟁탈전>은 바로 오늘날의 기준을 배제하고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어떤 의도된 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 특히 서양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유럽과 유럽스러운 지역만 따로 분류하여 서양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고 그 외의 모든 지역은 동양이라는 이름(아프리카, 남아메리카까지 동양이라고 우길 수 없기에 별도로 구분했을 뿐입니다)으로 한꺼번에 몰아버린 후 그들 스스로를 역사의 승자로 기록한 것이 서양사입니다. 물론, 허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을 승자로 등극시키기 위해 필요하 각색을 치밀하게 했지요. 서양은 처음부터 위대한 존재였다는 각색을.

 

이 책은 휘황찬란한 승리로 가득 찬 듯한 서양사는 사실 서구 사회의 처절한 생존기이며 밥그릇 쟁탈전의 기록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서양사의 번쩍거리는 포장을 벗겨내고 그들의 악전고투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이 시대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보이고 문제의 본질과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은 세계사로 변한 서양사 속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생존의 단계를 넘어섰고 생존의 몸부림이 모든 것을 쓸어 담는 힘이 되어 결국 세계사, 세계문명으로 자리를 잡은 역사가 서양사입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극장에 앉아 이 과정을 쭉 지켜본 거죠. 그 결과, 이렇게 세계를 구분한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서양사는 계획, 목표라는 큰 줄기 없이 산만하게 전개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은 우선 승자의 관점에서 정의되고 기록된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데, ‘명예혁명’과 ‘종개혁’과 같이 특정 사건에 대한 명칭은 승자적 관점의 역사 이해를 조장한다는 것을 유념시키면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선입견을 배제하고 역사의 흐름을 살핀다.

 

또 동양의 역사가 서양과 어떤 차별성을 갖고 진행돼 왔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동서양의 지리적 차이가 낳은 사고방식의 차이를 전제로 민간주도의 서양식 경제중심적 사고와 국가주도의 동양식 정치중심적 사고가 어떻게 서로 다른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냈는지를 이야기한다.

 

한국의 역사와 대비하면서 역사적 고비에 대한 이해를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중요한 대목마다 한국의 역사와 서양사를 공시대 감각으로 해석하면서 서양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책은 특히 서양사를 ‘토너먼트 경기 진행 방식’에 비유해 흥미롭게 풀어가면서 이 시대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역사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