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북 괴산으로 내려가 농민운동을 시작한 이태근. 그는 1991년 괴산미생물연구회에서 출발한 흙살림(www.heuksalim.com)을 20년째 꾸려가고 있다. 토종종자와 유기농업 재배기술, 유기농인증, 농산물유통, 농업정책을 연구해 유기농업이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도록 헌신해왔다.

 

*농부로부터, 이태근 외, 궁리

 

1993년 ‘핸드백을 입자’라는 독특한 슬로건의 ‘쌈지’를 탄생시켰던 청호균. 그는 IMF 당시 작업실이 없는 작가를 위해 스튜디오를 빌려주는 ‘쌈지스페이스’를 만들어 10년 넘게 후원했을 정도로 그의 예술사랑은 열렬하다. 인사동 ‘쌈지길’을 만들고, 인디밴드를 발굴하는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을 13년째 꾸준히 열고 있다. 2009년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www.ssamzienongbu.com)를 만들어 다양한 농촌디자인컨설팅을 진행했고, 지난해엔 파주 헤이리에 생태가게 ‘지렁이다’,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 유기농 레스토랑 ‘오가닉 튼튼밥상’을 열었다.

 

농부이자 농업과학자인 이태근과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사업가인 쌈지농부 천호균.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 ‘흙, 농사, 농부’라는 키워드가 있으니, 이들은 지난 여름 의기투합해 흙살림은 생산을, 쌈지농부는 유통을 맡아 협력하는 농산물유통매장 ‘농부로부터’를 파주 헤이리와 출판단지, 한남동에 열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인 <농부로부터>는 ‘농사, 사회적 기업, 새로운 삶’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놓고 도시적 삶의 새로운 대안과 함께 새롭게 개척하는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태근 대표는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유기농’이라는 말이 따로 없었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농사짓던 방식이 바로 유기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흙살림연구소에서 흙을 살피고 미생물 연구를 하다보면 이 세상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작은 미물들이 거대한 생명의 숲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생명체들은 서로 어울려 살며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세상 만물은 모두 제각기 소중한 존재임과 동시에 관계의 그물망에 있어 소중한 그물코가 된다. 얽히고 설켜 생명의 그물을 이루는 것이다.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 너와 나도 마찬가지다. 단절, 외면, 대결 구도는 비극의 시작이다.

 

천호균 대표는 2008년 말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참여하면서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 슬로건은 명함에도 썼을 만큼 이제 그의 인생에서 이름값과 동등한 무게를 갖게 됐다. 기업 ‘쌈지’를 운영해오면서 소외된 아름다움, 오래된 아름다움에 관심 있는 예술가들과 소통을 많이 해왔는데, 그들이 주로 농사, 농부, 농촌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생활은 고달프지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기쁨, 혹은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어떤 운명 같은 것을 안고 작업하는 걸 보면서, 농민들에게서도 비슷한 연민이나 동지의식을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예술의 변방지대에 있던 그들이 산업화로 인해 변방으로 밀려난 농민의 삶을 주목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작가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는 예술이 자연스럽게 농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흙을 만질 때 예술적 감성이 길러진다,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구호 아닌 구호를 만들게 됐다.

 

30여 년 전 이태근 대표가 괴산으로 내려가 농민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 친구들은 그가 하는 일을 무모하고 답답하게 봤다. 대학을 졸업한 뒤 친구들 대부분은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취직할 생각은 않고 시골로 내려가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딱하게 여겼다.

 

이 대표는 촌스러움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촌을 일으키는 것이 꿈이었다. 아이들 교육이나 노인 복지까지 두루두루 책임질 수 있는, 서로가 울타리가 돼주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애썼다. 넓은 길을 가는 대신 자신만의 좁은 오솔길을 걸어온 보람이 이제야 찾아오는 걸까. 퇴직을 한 친구들이 흙살림에서 할 일이 없겠느냐고 문의를 많이 해온다고 한다. 한창 직장 생활을 할 시기에는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고, 선뜻 내키지 않는 일도 마지못해 해야 하지만, 은퇴할 시기가 되면 인생을 돌아보고 총체적인 점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태근, 천호균 대표는 흔히 성공과 출세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매뉴얼, 즉 ‘스펙’과 관련해, 똑같은 매뉴얼만을 그대로 따라 하려다간 자기다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두 사람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꾸고 돌보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면서, 스타일은 옷이나 구두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 여기저기에서 향내를 풍기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