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터는 이 세계의 복잡성을 말해주는 상징이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앞에 놓인 장애물의 상징이다.


*어댑트, 팀 하포드, 강유리, 웅진지식하우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줄 리더나 전문가 집단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 깃든 예기치 못한 복잡성은 역량 있는 리더나 통찰력 있는 전문가의 두뇌조차도 무력화시킨다.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은 냉전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강경책을 펼칠 경우 소련 측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내라는 임무를 맡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찾아 의견을 물은 결과, 그들의 의견이 서로 완전히 상충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처럼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사회에서 전문가들이 지극히 제한적인 도움밖에 줄 수 없다면, 우리는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팀 하포드는 <어댑트>에서 이를 위해 진화의 프로세스를 도입한다. 바로 변이와 선택을 반복하는 ‘시행착오’가 그것이다. 변이와 선택의 반복이라는 진화 알고리즘은 문제가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서 온갖 이형을 시도해보고, 실패작은 도태시키고 효과가 있는 이형을 좀 더 시도해보는 과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시행착오는 복잡한 세상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막강한 프로세스인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계층화된 조직도를 가지고 있다. 조직도의 가장 윗부분에는 리더가 위치하며, 리더는 현장에서 수집된 정보를 통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다시 말단에 지시해 조직이 한 몸처럼 굴러가게 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처럼 이상화된 계층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앙에서 요약하고 분석해낸 큰 그림은 결과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정보가 되고, 충성도 높고 단합된 팀은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져 대안적인 관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엄격한 명령 체계는 피드백이 상부로 도달하는 것을 차단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탈중앙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실마리는 작은 것으로부터

 

이라크전 당시 이라크 주둔 미군은 이라크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미군은 테러리스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라크 시민들과 떨어져 사막 한가운데 있는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고, 현지인들은 보복이 두려워 미군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이 최악의 상황이 반전을 맞게 된 것은 조직의 명령을 거부하고 상황에 맞게 전략을 재정비한 H. R. 맥마스터 연대장 덕분이었다. 그는 이라크로 배치가 결정되자 부하들과 함께 이라크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라크인들을 존중할 것을 지시했으며, 도시 안에 기지를 만들었다.

 

그러자 이라크인들은 서서히 미군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대가로 맥마스터는 상관에게서 “전략적 사고를 멈추라”는 경고를 받고 승진에서도 탈락해야 했다. 하지만 맥마스터의 방식은 이라크의 미군들에게 서서히 전파돼 알카에다가 완전히 퇴각하고 미군과 이라크인의 사망자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때로는 조직이 아무리 유연하게 대응해도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더욱 다양한 변이와 실험이 요구된다. 1675년 영국왕립천문대가 설립된 이래 소속 천문학자들은 출항한 배가 동서로 얼마나 멀리 위치해 있는가, 즉 ‘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지만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애꿎은 사상자만 양산하고 있었다.

 

1714년 영국 의회는 누구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2만 파운드의 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경도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더 이상 영국왕립천문대의 천문학자들만이 그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해답에 누구에게서든 나올 수 있음을 의미했다. 마침내 1737년 시골 목수 존 해리슨이 만든 해상시계는 해묵은 경도 문제를 일거에 해소시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효과적이고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해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다. 한때 개발도상국 오지 마을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이펌프’가 설치됐다. 아이들이 펌프 위에서 뛰놀기만 하면 그 힘으로 물을 퍼 올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획기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이 기계는 비싼 데다 비효율적이기까지 해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그 위에서 뛰어놀아야만 쓸모가 있는 것이었다. 지은이는 현장에서 어떤 방법이 쓸모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사들과 같이 임상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패를 감싸 안아라

 

스코틀랜드 출신 전염병학자인 아키 코크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포로들은 심각한 부종에 시달리고 있었고, 누구도 그 원인이나 치료법을 알지 못했다. 코크런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다소 무모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중증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의 그룹에 수중에 있던 비타민 C와 마마이트를 투여했는데, 마마이트를 복용한 그룹에서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형태의 대조실험을 통해 해외 원조의 효과를 검증하고,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서 활발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원조 방법을 선별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의 독창적인 통찰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금융위기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진보하기 위해서는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해 관대해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 실패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소한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AIG 사태는 세계 경제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빠트렸다. 철저한 안전 시스템으로 보장돼 있는 금융 시스템이 왜 그렇게 힘없이 붕괴된 것일까? 지은이는 이 책에서 예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찰스 페로의 말을 빌려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의 위험성을 언급한다.

 

강결합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너무 빠르게 확산돼 실패에 적응하거나 뭔가 다른 방법을 써보기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금융 시스템 역시 철저한 안전 시스템으로 이중 삼중 둘러싸여 강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에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것이다.

 

강결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원자력발전소나 시추시설처럼 복잡한 산업시설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재난 중 하나로 기록된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나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 사고 역시 작은 실수가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을 만나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강결합 된 시스템을 연관관계가 느슨하고 좀 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작은 실수로 모든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미노 곳곳에 안전문을 설치하는 것과 유사하다.

 

지은이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법으로 은행들이 충분한 자본 쿠션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코코 본드’를 보유하는 방법, 위기에 봉착한 은행을 ‘가교 은행’과 ‘잔류 은행’으로 강제 분리하는 방법 등을 제안한다.

 

기업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

 

적응의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가 시행착오, 즉 실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것이 실패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손실을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도박사들이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돈을 잃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수 또는 손실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대응법은 이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만, 우리의 본능은 실수를 부정하게 만든다. 심지어 실패를 성공으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신 콤플렉스’도 적응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실험 이후로도 코크런은 다양한 임상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하고 희망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의 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질타했다. 자신들은 올바른 치료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험이 필요 없다는 ‘신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실패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신규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망가지는 건 사람들 개개인이 아니라 추상적 존재인 ‘법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면서 마음껏 실험하고 혁신하고 적응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조직(기업)과 많은 실험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실험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확신할 수 있는 개인의 용기가 진보와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준다.


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