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동양에도 거대한 제국들은 존재했다. 아니 애초에 제국은 동양에서 시작됐다.

 

몽골 제국은 중세 세계를 개편하다시피 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초조함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맞수였으며 인도 무굴 제국의 궁정 의례는 인도를 식민지화했던 영국 왕실에 거꾸로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크메르 제국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불교 사원들은 크메르 제국이 없었다면 성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후덕한 얼굴에 뺨에는 붉은 빛이 돈다.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두건을 쓴 모습은 자못 인자한 유학자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유라시아 대륙을 최초로 정복한 몽골 제국의 시황제 ‘칭기즈 칸’. 드라마와 소설 등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진짜 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은 몽골 제국이 고려에서 저 멀리 유럽 동부까지 정복했다는 것 정도다. 그렇지만 일개 부족에서 제국까지 이르는 데에는 수많은 전투뿐만 아니라 부족 사회의 구조조정과 정복민들의 위무와 같은 노련한 정치적·외교적 수완 역시 필요했다.

 

<아시아의 대제국들>은 옛 역사서에 등장하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세밀화들과 당시 역사를 담은 기록과 다름없는 정교한 카펫 문양, 동전의 조각들을 통해 칭기즈 칸의 정복과 위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과거 아시아 제국의 위상을 알리고 있다. 이와 함께 각각 뚜렷한 개성뿐만 아니라 제국으로서의 공통점도 갖고 있던 7개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양한 사진과 함께 담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명과 관련해선, 네덜란드 사람 그림에 담긴 중국의 청화 백자, 아름다운 졸정원의 풍경, 조정에서 마테오 리치에게 명함으로써 제작하게 한 정교한 세계 지도 등을 통해 다소 경직되고 정체된 사회라고만 여겨졌던 명대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책은 또한 그저 신비하게만 여겨질 뿐 역사와 기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앙코르의 아름다운 사원들이 모두 조선왕조실록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역사를 담은 사료임을 밝히며, 건축과 조각의 양식 변화나 사원의 장식벽에 새겨진 금석문을 통해 프랑스에게 점령당하기 전인 19세기까지 이어져 온 크메르 제국의 황금기를 명징하게 되살려낸다.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 터키, 그 태반의 이유는 오스만 제국 시기의 유적과 문화의 영향이 크다. 책에는 아랍하면 떠올릴 만한 다양한 채색 벽화와 삽화집, 우아한 돔 지붕의 궁전과 사원, 술탄의 화려한 인장, 투그라까지 온갖 화려한 유물과 유적들로 20세기까지 존속하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교두보로 역할을 했던 오스만 제국의 문화적 업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색색의 타일로 장식한 왕의 모스크, 세계 최대의 시민광장인 메이단에나크시에자한과 같은 이스파한의 도시 건축물, ‘샤나메’, ‘하프트 아우랑(칠성좌)’등의 섬세한 삽화집들로 사파비 제국이 페르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완성시켰음을 확인시켜 준다.

 

책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타지마할 정도일 무굴 제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담고 있다. 아크바르의 일생을 담은 ‘아크바르나마’와 같이 희귀한 삽화집을 통해 2대 황제인 아크바르의 제국 중흥 과정을 보여주며, 동전에 새겨진 이름과 부모를 위해 지은 우아한 대리석 묘소를 통해 자한기르의 아내인 누르자한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누리고 제국에 영향을 미쳤는지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책엔 겨우 50년간 지속됐을 뿐이지만 이후 동아시아에 참혹한 흔적을 남기고 말았던 일본 제국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옛 사진, 당대의 목판화와 애국을 촉구하는 신문의 만평, 서양 신문에 실린 선정적인 삽화까지 동원하며 일본이 서양의 제국주의에 반응하며 제국을 건설하고 또 패망으로 치달아 가는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서양의 제국들이 19~20세기에 세계를 좌지우지했다면, 아시아의 제국들은 그 이전 시기, 사실상 지난 1000년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세계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했다. 이 제국들은 어떻게 그러한 힘을 얻고 또 잃게 됐을까? 이 제국들은 과연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책은 이러한 질문에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만한 열쇠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