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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배려하는 건축의 마음은?문화 2012. 7. 21. 08:02
[반하는 건축]
<지데일리 한주연기자> “건축의 깨달음은 자연의 따뜻한 얼굴을 완전하게 재생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운 과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돌아가야 할 그리운 과거는 오히려 미래의 시간 속에서 가능하다.”
*반하는 건축, 함성호, 문예중앙
<반하는 건축>은 시인이자 건축가, 건축평론가로 잘 알려진 함성호의 인문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두 얼굴의 건축 이야기로, 지은이가 1998년 건축 사무실을 연 이후 10여 년간 자신의 건축 이론을 갈고 닦으며 쓴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지은이는 건축이라는 공간 예술에 내재하고 있는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을 실재의 건축에 빗대어 밝혀내는 ‘반(反)하는’ 건축, 그리고 새로운 건축의 방법과 새로운 공간의 창조에 대한 매혹을 뜻하는 ‘반하는(惑)’ 건축으로 나눠 두 얼굴을 가진 건축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은이가 말하는 ‘반(反)하는 건축’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반(反)은 당연히 강한 부정의 의미다. 그는 이 책에서 건축에 담긴 ‘어떤 내밀한 욕망과 사회적 담론’을 밝혀내고 있다. 그는 실재하는 건축보다 그 거울 현실의 건축을 분석해나가며, 건축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ㆍ문화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짚어나간다.지은이는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CAD)에 의해 구조화되는 2진법적 도시 구조의 이면을 파헤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도시 설계자들이 만들어낸 현대도시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따라 인간을 길들이고 조정하며 인간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는 말한다. 인간의 생활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도시 설계자들의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설계되고 있으며, 인간은 그 불안한 시스템 속에서 떠돌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산책할 수 있는 도시의 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도로의 주변에는 끊임없는 광고의 유혹이 있을 뿐이고 한적한 교외의 거리마저 보행자를 위한 공간은 전혀 배려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자동차의 속도에 의해 느껴지는 위협만이 존재한다. 이 도시의 거리가 갖는 이데올로기는 우리로 하여금 걷지 말고 자동차 산업의 이익에 편승할 것을 강제한다. 모든 거리/도로는 이미 자동차를 위해 있다. 사람들은 한 정거장의 시내버스 구간도 걷기를 꺼려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 도시에는 이미 걷는 자를 위한 공간의 배려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정치권력과 자본의 시녀로 전락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제3공화국에서 제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인 ‘국립민속박물관’ ‘세종문화회관’ ‘롯데월드’ ‘독립기념관’ ‘63빌딩’ 등의 사례뿐 아니라, 민족 생활환경의 파괴와 고부갈등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킨 아파트 주거형식에 대해 분석한다.
더불어 점차 심각해지는 도시화의 문제점도 제기된다. 현대도시의 도로는, 신호등과 지하도 등의 기계적 제어장치와 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판 등으로 인해 점차 사람들의 도보 문화가 사라져가고 자동차만을 위한 도로가 설계되는 세태다.
건축은 자본의 시녀이다. 그래서 도시는 정치권력의 공동묘지이다. 건축도 마찬가지지만 도시는 더더욱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다. 한 시대의 정치 지배층들은 건설의 책임은 지지만(그들의 선거 공약에는 장밋빛 도시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하다) 그 이후는 책임지지 않는다. 임기 안에, 특히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더더욱 공청회 같은 적극적 의견 수렴을 가능한 줄여나가는 것이 돈과 시간과 쓸데없는 정력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천민자본주의 하에서의 도시는 단연코 정치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절대적으로 복속된다. 최고 권력자의 한마디로 도시가 버려지고 새로 생긴다. 전통도 달라진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울리는 새벽종과 함께 새로운 길이 나 있다. 최고 권력자가 가는 길을 따라 동산에 있는 나무가 서산으로 옮겨 심어지고 북산이 남산으로 옮겨 오기도 하는 전능을 보여준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모든 도시 행정이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이때는 위성도시라는 말 자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한 나라의 모든 편의들이 태양(?)을 위한 위성에 불과하니 말이다.
지은이는 일산, 평촌, 분당 등지 수도권 신도시와 관련해 “신도시 개발은 부동산 자본주의의 이익과 취약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하고, 쇼핑타운으로 전락해버린 일산 신도시 등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신도시 설계의 문제점을 밝혀낸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선물상자로 표현한 ‘뉴코아 백화점’, 서구 중세의 성곽을 본떠 안전한 모험의 세계로 유도하는 ‘롯데월드’, 일이층을 오픈시켜 내부를 개방하는 홍대 카페 등 광고의 세계를 실현한 건축, 광고에 의해 모욕 받는 건축의 실태도 묘사된다.
점차 기업화돼가는 종교와 종교 건축물에 대한 비판도 주목된다. 지은이는 “도시의 어둠 속에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붉은 네온의 십자가들은 규모의 경제 하에서 이뤄지는 대리점식 판매망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오늘날 건축에 대한 진지한 비판적 분석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건축 예술을 꿈꾸는 지은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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