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손정우기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분야의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지식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사상을 전개했을까?

 

<휴머니스트를 위하여> 콘스탄틴 폰 바를뢰벤 지음, 강주헌 옮김, 사계절출판사 펴냄.


<휴머니스트를 위하여>는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을 포함한 뛰어난 개인들이 지난 세기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본다. 아울러 역사적 기록에서 나아가 앞으로 펼쳐진 미래에 대해서도 조망한다.

 

이 책은 각 분야 대가들의 다양한 논점을 담고 있지만, 타자와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서구와 비서구, 문명의 공존과 충돌,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그렇지만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 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질문에 대해 단언하지 않고,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려 상대방과 최대한 공통분모를 찾은 후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만큼 개념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는 것은 대화의 전제조건이다. 입장을 달리하는 토론자들이 상대의 관점을 배제한 채 각자의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성숙한 토론 문화와 사회 통합을 위해 이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획일적인 세계질서가 강요되고 나와 다른 목소리를 용인하지 못하는 지금, 이 책은 경계와 억압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모색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책은 ‘문명 간 소통과 대화’를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1세계와 3세계, 서양과 동양을 망라한 다양한 대담자들은 다른 문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보인다. 이들은 다른 문명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표면화되거나 잠재해 있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편견 없이 마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 또 각 종교가 내세우는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다양한 모습의 현대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문명의 충돌론을 제기한 헌팅턴은 문명 간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뿌리 깊은 적대감에 여전히 주목한다. 동양적 사유와의 관련성 속에서 종종 논의되기도 하는 물리학자 프리고진은 동양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서구의 신비주의적·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경계한다.

 

동아시아 발전의 이유를 유교에서 찾아 온 두웨이밍은 유교가 보편 윤리로 기능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대담자들(푸엔테스, 마요르 등)은 서구의 정신세계를 수용하면서도 고유한 문화를 지켜 온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대안적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과 출신 지역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면서도 문명 간 대화를 통해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낸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생화학자 샤가프,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 핵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등 유명 과학자들과의 대담에서는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혜택을 준 점에는 동의하나 과학기술의 잘못된 사용을 우려한다. 수소폭탄을 개발한 텔러가 과학기술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개발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과학기술 자체보다 그 사용을 결정하는 집단에 더 큰 책임을 물었다면, 샤가프는 생명(유전)과학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며 생명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놓기를 바란다.

 

드브레와 비릴리오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을 주목하면서도 정보과학의 발전을 곧바로 소통의 증대나 민주주의의 신장과 연결시키는 데에는 회의적 시각을 보인다. 이들은 모두 기술 결정론적 시각을 비판하고 그 기술을 작동시키는 인간의 역할, 기술의 배후에 있는 사회의 구조를 중시한다.

 

세계화와 문명 간 단절로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재, 석학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진단한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갈리는 여러 종류(금융, 테러, 질병 등)의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초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수의 국가만이 영향력을 독점하거나 책임을 방기하는 등 국제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권력의 다자주의를 제시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징거는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으로 진보해 왔으며 특유의 혼성적 문화를 일구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나 연합체에 점차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고디머는 현재의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고 인권과 평등의 신장을 쟁취한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며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 이들은 인문주의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인, 작가 외에도 건축가, 음악가 등 예술 분야에 속한 이도 있다. 공통적으로 생각의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에 더 의미를 두고 있으며 신성한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실용주의가 지배하기 전의 가치들에 주목한다.

 

건축가이자 사회주의자인 니마이어는 건축 기술이나 자재 못지않게 시나 종교적 심성에서 영감과 직관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정신분석학자 크리스테바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위기로 심리적 공간의 파괴를 언급하면서 사회 내부의 이방인들, 인간 내면의 소외된 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미우오슈는 근대 이후로 합리주의 계열의 사상으로 편향될 시점마다 문학과 예술이 균형을 잡아 주었다며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작가 엘리 위젤은 역사의 비극을 기록하는 시, 문학,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