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도 한 슬럼가의 아이들이 있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운메시의 노트는 직접 그린 설계도들로 빽빽하고, 아빠가 엄마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쿤다니카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오늘도 아슈람 아이들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학교를 지켜 낼 유일한 희망이던 연극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서도 사하스는 낮은 담에 발 하나를 올려놓고 다른 내일을 꿈꿨으며, 기차역에서 부모를 잃은 둘라베시는 엉뚱한 장난으로 늘 모두를 웃음 짓게 한다. 이 아이들에게도 꿈은 있다.


사진_행복한 슬럼학교ㅣ윌 랜달 지음ㅣ홍한별 옮김ㅣ갈라파고스 펴냄 이곳에 런던에서 온 윌이 영어 교사로 합류한다. 즐거운 수업이 계속되던 어느 날, 슬럼 개발 계획이 갑작스레 들려오고 학교는 위기에 빠진다. 과연 윌과 아이들은 개발업자의 선전포고에 맞서 학교를 지켜 낼 수 있을까?


≪행복한 슬럼학교≫는 생활에 지쳐 무기력하게 살던 영국인 교사 윌 랜달이 인도에 갔다가 슬럼가의 아이들과 함께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하는 분투기다. 함께 싸우고 생활하면서, 아이들은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고 윌은 슬럼가 사람들의 열정에 전염돼 뜨거운 사람으로 변모한다.


주식 중개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런던으로 온 윌 랜달은 비어가는 통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런던의 한 학교에서 선생 일을 시작했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법 집단인 데다가 선생들의 의욕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 어디에서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미술관 단체 관람을 간 운명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미술관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들고자 했고, 다른 선생들은 외면하기에 바빴다.


바로 그때 윌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한 할머니가 있었다. 눈 깜짝할 새 아이들을 제압한 마리아 헬레나 폰 위르펠베르퍼는 윌에게 인도 여행을 제안한다. 자기가 비행기 삯을 댈 테니 가방만 들어달라는 조건이었다.

 

“도시나 시골을 겉핥기식으로 스치듯 지나쳐 봐야, 다른 문화에 대한 아주 얄팍한 이해나 사람들에 대한 정형화된 인식 이상을 얻기는 힘든 법이다. 여행은 기분전환, 책임으로부터의 도피, 내가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윌은 일단 런던을 벗어나야 했다. 결국 그는 인도로 가기로 결심한다. 1년간의 인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할머니가 인도에서 오랜 연인과 함께 길을 떠남과 동시에 윌의 임무는 끝이 났다. 가능한 빨리 인도를 벗어날 생각을 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아비세크라는 청년의 제안으로 고아들을 돌보는 학교(아슈람)를 방문한다. 거기서 한 아이의 갈색 눈동자에 빠진 그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윌과 아이들의 수업이 시작된다.


인도 슬럼가의 집들은 대개 사유지에 허가 없이 지은 것들이다. 사회안전망이 구축된 것도 아니어서 땅 주인이 개발을 하겠다고 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한 인도의 아역 배우 루비나 알리와 그 가족이 판자촌 강제 철거로 노숙자 신세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의 학교도 같은 위기에 처했다. 땅 주인이 개발에 나선 것이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 폭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한 아이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윌과 아이들은 우아한 부인(독지가)의 권유를 따라 학교를 구하기 위해 연극을 준비한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재정부족과 함께 빈부 격차에서 온 계층 간 갈등도 넘어서야 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요. 전 영국에 돌아가서 자격시험에 통과하면 바로 여기로 돌아올 거예요. 저한테 가장 용기를 주는 게 뭔지 아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할 정도로 적은데도 환자들이 모두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고 고마워한다는 거지요. 영국에서 응급실 근무할 때 하고는 전혀 달라요. 거기서 일하다 보면 내가 정신병동에 들어갈 것 같죠.”(크리스천)

“한 아이 한 아이가 나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대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얻을 수 없는 것, 오쇼에서 몸에 좋은 과자와 허브차를 앞에 놓고 아무리 대화를 나눠 봐야 얻을 수 없는 것. 이 아이들은 만질 수도 설명할 수도 없이 순수한 무언가를 주었다. 내가 지금 관객들과 함께 일어서서 큰 소리로 박수를 치지 않으면 눈물을 터뜨리고 말게 만들 무언가를. 내가 한 역할이 아무리 미미했다 하더라도, 이 넓은 바다에 단 한 방울의 도움이라도 보탰다는 사실에 만족했고 뿌듯하기까지 했다.”(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열정이 고갈된 채 표류를 반복한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실제로 이처럼 살았던 크리스천과 윌에게, 사람의 손길 자체에 감사하는 인도라는 공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억눌린 열정은 다시 타올랐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들대로, 인도인들은 인도인대로 행복해졌다.


이 책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행복한 슬럼 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고 진중하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