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곧 부(富)다. 이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 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 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별나라에서 온 경제학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사실 이 경제학이야말로 지금까지 존재해 온 유일한 경제학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ㅣ존 러스킨 지음ㅣ곽계일 옮김ㅣ아인북스 펴냄다소 철 지난 한 권의 책이 다시금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7년여 전 출간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애덤 스미스와 맬서스,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지는 정통파 경제학과 배척점에 섰다는 점에서 자본론과 동일하다.

 

아울러 출간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이 책은 이후 인도의 평화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해 버나드 쇼, 톨스토이 등의 삶을 통째로 바꿀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간디는 “내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책”이라며 이 책의 가치를 더했다.

 

어떤 경제사가는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책들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되며 으뜸에 자리에 있다는 경제사가들의 평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은 이 시대에 다시금 우리 앞에 고개를 내미는 것일까?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경제학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실용학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물음을 던진다. 또 21세기 현재의 시점에서 지구적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저서다. 존 러스킨

 

무엇보다 지은이 존 러스킨은 이 책에서 경제학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죽음에 맞선 ‘생명의 경제학’, 악마에 대항하는 ‘천국의 경제학’ 인간의 뜨거운 애정의 피가 흐르는 ‘인간의 경제학’을 지향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생명’의 가치가 유일한 척도인 그의 경제론은 정직과 도덕, 정의 등 인간의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뒀다. 그는 노동과 자본, 고용, 수요와 공급 등의 경제용어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윤리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반 경제학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도덕’ ‘정직’ ‘애정’ ‘신뢰’ ‘영혼’ 등과 같은 단어들이 그의 중심 사상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굶주린 어머니와 아들이 한 조각의 빵을 놓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인간관계도 무조건 적개심을 품고 경쟁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천국의 포도원에는 처음과 나중이 없다.”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영속성을 이야기하지만 존 러스킨에게는 당대에 외롭게 투쟁하고 후대에 빛을 비출만한 반-경제학의 모토가 된 성경 본문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법칙을 깨뜨리는 이 ‘이상한’ 불평등은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도 동일한 구원을 베푸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온 사람들과의 계약을 정직하게 이행할 뿐 아니라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동일한 보수’를 줌으로써 결국 모두의 부를 창출하는 주인의 모습은 인간의 이성(선형적 논리)을 넘은 지혜로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은 “왜, 모두의 부를 더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이는 러스킨의 시대, 즉 애덤스미스의 국부론과 같은 정통 경제학이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며 빅토리아 왕조의 산업혁명의 제사를 드리던 세계사를 수놓은 영국의 화려한 물질문명의 풍요에 대치되고 있는 부분이다. 풍요 속의 빈곤과 같은 역사의 뒤안길에 스러진 노동자들과 실직자, 폐허가 된 자연의 모습이 러스킨에게 ‘나중에 온 자들’을 위한 경제학은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영국 화가 터너를 좋아하고, 풍경화를 좋아하던 러스킨의 섬세한 ‘윤리의 예술성’은 그의 예술론뿐 아니라 이 비판적 정치경제학에도 여실히 드러나 이후 마르크스의 과학주의적인 방법과도 다른 문학의 경지에 이른다.

 

이는 러스킨이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 시대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장 라인에 갇힌 부품, 소모되는 기계로서의 육체일 뿐인 노동자의 모습이 아닌 영혼과 마음을 지닌 존재로 보고자 했던 러스킨의 의지는 이러한 ‘마음의 경영’이 가져오는 바람직한 부의 법칙을 이 책을 통해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