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인류학을 생각한다ㅣ리처드 R. 윌크·리사 C. 클리젯 지음ㅣ홍성흡·정문영 옮김ㅣ일조각 펴냄 인류학은 인간의 문화와 기원, 그 특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만개한 시기에 서구가 ‘원시’ 부족과 사회를 만난 이래 인류학은 서구 문화와 사회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지배하고 계몽해야 할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시작됐다.

 

20세기 들어 각기 다른 길을 가던 두 학문이 만나게 된다. 1915년 말리노프스키가 트로브리안드 섬 주민들의 삶을 연구하며 보게 된 것은 유럽 문화와 상반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체계였다. 돈과 소유에 대한 집착,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서구 사회에 반해 트로브리안드 사회는 전통적인 힘, 의무와 도리, 주술 신앙, 사회적 야심과 허영 등 일련의 복합적인 요소들에 기반했다.

 

전통적인 서양 경제학은 자민족 중심적인 도구였기에 유럽인들 외에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인류학이 자신보다 더 크고 강하며 풍요로운 학문 분야인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싸움을 걸기 시작하면서 ‘경제 인류학’이란 분과 학문이 싹트기 시작했다.

 

:::text Point::: 농사를 짓는 가족은 어떻게 해서 대가족을 이루게 되고 또 빈곤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단결해서 부자나 유력자들에 대항해 성공적으로 투쟁할 수 있을까? 글로벌 기업, 전 지구적인 원거리 통신, 작업장에서의 컴퓨터 도입이라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 지역 문화는 어떻게 될까? 자유 무역은 발리의 10대 공장 노동자와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오하이오의 10대를 어떻게 연결해주는가?

 

오늘날 세계의 핵심적인 문제와 이슈들 대부분이 경제 인류학자들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다. 그 성과물은 난해하지만 현실성이 있다. 글의 수준도 놀라울 정도로 높다. 이 학문은 사람들의 실제 삶과 맞물려 있으며, 부족과 마을 단위의 과거 세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수백만 명의 굶주린 이농자들이 가상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미래를 생각하는 데에도 실질적으로 쓸모 있는 교훈을 얻어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경제 인류학을 생각한다>는 경제 인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이었던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에서부터 시작한다.

 

실체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칼 폴라니. 그는 경제라는 것이 사회에 매립돼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가 아는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특정 사회체계 내에서 기능하는 것일 뿐, 다른 사회체계에서는 경제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며 “공통적인 경제 원리인 호혜성과 재분배, 교환은 사회체계의 유형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형식론자들은 그의 이 같은 주장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사회체계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원리가 있다고 봤다. 극대화를 추구하는 개인의 경제적 합리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종류의 행위에서나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식론과 실체론의 논쟁 이후 경제 인류학은 신마르크스주의, 생태 인류학, 개발 인류학, 농민 연구 등 수많은 방향으로 급속히 다변화했다. 모두 나름의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경제 현상을 타당하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논의들은 모든 경제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낼 수 있을까? 여기서 지은이(리처드 R. 윌크·리사 C. 클리젯)는 중요한 점을 짚어낸다.

 

사실상 모든 사회과학은 온전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로 우뚝 서 있는 줄기 아래에는 땅 속에 숨은 뿌리가 있다. 지은이는 경제 철학과 ‘인간 본성’의 문제라고 본다. 개인의 합리성과 효용 추구를 중시하는 서구 미시경제학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 밑바탕은 어떠한 사상이 떠받치고 있는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하는 사회 경제학과 사회 구조 및 계급 간의 문제를 중심에 두는 정치 경제학은 어떠한가? 의미와 의사소통 체계를 통해 경제 현상을 해석하는 문화 경제학은?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 사회 경제학, 정치 경제학, 문화 경제학의 이론적 흐름과 배경,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지은이는 각 이론들의 장·단점과 한계에 대해 질문한다.

 

:::text Point::: 우리는 경제 인류학이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유일한 학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생물학과 인간 진화(론)가 인간 행위의 생물학적 기초를 이해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 인류학은 사회과학 내부에서 갖가지 철학적 전통들이 서로 만나는 바로 그 교차점에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제 인류학은 세 진영 모두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듣기에 따라서는 난처하고 어려운 위치에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랬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진심이다. 중간에 있으면 모든 이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단일한 정체성이 없다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 수도 있다. 감수해야 할 위험은 크다. 그러나 그 보상은 위험에 값하는 것이리라.

 

만약 경제 인류학이 인간의 모든 경제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학문이라면 이러한 방법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류학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 추론하고 비교하고 대조해 궁극적으로 왜 인간의 생활 방식에 그토록 큰 변이성이 존재하며, 경로들이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 한다.

 

동시에 모든 문화를 함께 묶어주고 모든 인류의 경험을 통합하는 보편적 특성을 찾고 싶어 한다. 인류학자에게 경제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그 경제가 작동하는 사회와 문화와 긴밀히 통합돼 있으며, 어떤 경제적 행위는 앞에서 살펴본 이론들 중 하나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이자 경제 인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연구 분야가 ‘선물’이다. 부모님에게 물려받는 재산, 자기 재산을 부족민들 앞에서 태우고 나누어주는 포틀래치, 빌 게이츠의 어마어마한 자선사업, 이 모든 것이 ‘선물’의 영역에 들어간다. 선물하는 행위는 이기심의 측면, 사회 통합의 요소, 도덕 질서를 확립하거나 재확인해주는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모든 측면을 종합해야만 선물하는 행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인간 행위를 이해하는 데도 적용되는 관점이다.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경제 인류학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경제 인류학자들은 대체로 다른 사회과학자들에 비해 각기 다른 인간 본성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미시경제학, 사회 경제학, 도덕 경제학, 이 세 가지 패러다임 모두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절충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적 입장, 서로 다른 수많은 도구들을 사용하면서 충실한 관찰을 통해 이론들을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무수히 다양한 사회문화적·정치경제적 환경에서 다양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인간과 인간의 행위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들이 제기한 근본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경제 인류학의 기틀을 잡아나가는 데 있어 기초적인 인간 본성에 대해 사회과학 분과들이 서로 대화를 계속해 나가는 일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