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사람만 돈을 벌고 돈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해준 게 뭐가 있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 내일도 없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자식 낳지 말라고 말한다” - 어느 신용 불량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2002년 1억487만 장, 그리고 2010년 1억1187만 장. 최근 공식 통계(한국은행 2010.8)로 신용카드 발급 장수는 지난 2009년보다 11.6% 늘었다. 총 발급 장수가 다시 1억 장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09년 중순으로 7년 만이었다. 신용카드 발급률을 높이려는 신용카드사의 과당경쟁이 여전하고,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로 가계 부담을 돌파해 보려는 양상은 카드대란이 일어났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대출 권하는 사회>는 신용카드 문제가 만들어진 때로 돌아가 그 기원과 구조를 살핀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부자 되세요”. 2000년 대 초반, 정부가 전 사회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면서 유명 배우들이 모델로 등장해 신용카드 광고가 TV를 도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신용카드는 능력이 없는, 열심히 일해도 떠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무분별하게 발급됐고, 부자가 되겠다는 그들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문제는 불거져 신용카드 대란으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신용 불량자로 불리는 400만 명가량의 과다 채무자들이 발생했고, 신용카드 연체가 누적되면서 업계 수위를 달리던 신용카드사가 유동성 위기로 쓰러질 위험에 처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적정 신용카드 수수료 산출을 위한 원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을 기준으로 삼성카드 등 3개 카드 회사의 초과이윤은 평균 8,40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판매에 의한 초과이윤은 328억 원에 불과한 반면 현금 서비스 및 카드론 서비스 등이 각각 4,642억 원, 3,433억 원에 이르러 삼성카드 1조8백억 원, LG카드 9,362억 원, 국민카드 5,047억 원의 초과이윤이 발생했다. 3개사 모두 대출 부분의 초과이윤 규모는 카드사업부 전체의 초과이윤 규모와 거의 일치했다. 따라서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 서비스가 카드사업부 전체의 초과이윤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엔 무이자와 이자 할인을 강조하며 손쉬운 대출을 권하는 대부 업체 광고들이 케이블 방송을 도배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이메일은 매일같이 들어오는 대출 상담 홍보 문구로 넘쳐 나고 있으며 당장 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 역시 공해 수준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대부 업체만 1만5380개, 거래자는 189만3535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공식적인 대부 업체 이용 실태일 뿐 불법 사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2~3배 이상 되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른바 대한민국은 ‘사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쓴 상태다.

 

2000년대 초 신용카드는 물건을 사고 대금을 나중에 지불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용판매 용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신용카드사들은 주업무인 신용판매에서 전체 매출의 30퍼센트를, 이른바 부대 업무라 불리는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에서 매출의 70퍼센트 이상을 올리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다. 대출이 필요한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매겨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고비를 써가며 경쟁적으로 신용카드 발급을 확대하려 했던 것은 현금 서비스와 카드론을 이용하는 저소득층 고객들의 대출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지불 능력과 상관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출을 권하는 사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신용 불량자들은 대부분 신용카드 연체에 대해 카드 돌려막기를 1년 이상 하다가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이들은 처음에 실직, 사업 실패로 소득 감소를 경험하면서 생활비나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쉽게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를 받았고 이를 갚기 어렵게 되자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카드 돌려막기라는 행위는 채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채를 갚고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1~2년 이상 돌려막기를 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신용카드사에 지급한 이자가 이미 원금을 상회했음을 의미한다. 돌려막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신용카드사들은 연체금을 대환 대출로 전환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장 신용카드 빚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서민들은 일단 부채를 대출로 돌려 분할상환할 수 있다는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환 대출은 신용카드사들이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이용한 방법일 뿐, 높은 폭리를 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특히 처음에는 원금은 적게 갚고 이자를 많이 갚는 방식이기에 몇 년간 빚을 갚아도 이자만 계속 갚게 되는 부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용 불량자 문제는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가 이뤄지면서 신용의 상품화와 더불어 약탈적 대출시장이 만들어진 결과로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 정책으로 신용카드가 쉽게 발급됐다는 문제는 인정하지만,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한 끝에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것은 결국 개인의 탓이라고 말한다. 대다수의 여론과 보수 언론도 정부의 신용 회복 정책이나 개인 파산 문제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들먹이며 이들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용 불량자 문제는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넘어 대출을 받고 그렇게 대출받은 돈으로 사치와 과소비를 했던,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이득을 얻었던 주체는 따로 있었다. 신용카드를 손에 쥐어 주며 “소비가 미덕이고 국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며 신용카드 사용을 독려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정부였다. 이런 정부 정책으로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에 30퍼센트에 이르는 고금리를 적용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긴 것은 신용카드 업체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재벌 대기업들이었다.

 

민주 정부가 경제 위기로 끝없이 추락하는 내수 소비를 활성화하고자 신용카드 규제들을 풀자 새로운 재벌 대기업들이 신용카드 업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신용카드사들 간의 과당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기업·개인이 모두 신용카드 대출 광풍에 휩쓸려 들어간 결과, 불과 몇 년 만에 경제활동인구의 16퍼센트에 육박하는 4백만 명의 신용 불량자가 양산됐다.

 

신용카드사들 역시 무분별한 대출을 제공한 결과 부실 채권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이른바 카드 대란을 맞았다. 당시 정부에서 만들어진 신용 불량자 문제가 다음 정부에서 폭발했고, 정부는 2004년 말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05년 4월 신용 불량자 등록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신용 불량자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말 서울 상계동에 미소금융 100호 지점 개소식이 열렸다. 현 정부에서는 친서민 행보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2009년 12월에는 미소금융, 지난해 7월에는 정부와 서민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한 햇살론을 출시한 바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저신용·저소득 서민에게 10퍼센트대의 저금리로 대출을 해준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정작 저신용·저소득 서민에게는 대출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의 모델이자 대표적인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인 그라민 은행과 관련해 최근 고위층의 횡령, 고금리, 강제 상환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도 이런 대응 방식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이미 수천만 원의 빚을 진 신용 불량자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방식’은 빚을 늘릴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신용 불량자들은 민주 정부의 경제정책과 그에 대응한 신용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다. 당시 재벌 대기업 신용카드사들이 이들의 미래 소득으로 연 1조 원에 가까운 초과이윤을 챙기는 동안 신용 불량자들은 벗어날 수 없는 빚으로 자살과 장기 매매, 범죄 사이에서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온종일 일하고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이자를 갚아도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는 빚 앞에서, 희망 없는 미래 앞에서 절망했던 사람들이다. 제대로 지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고 있다.

 

세계 몇 대 경제 대국이라는 발전된 국가도, 민주적인 정부도 지금까지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이들의 고통은 언제가지 계속 반복돼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