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전력 사용량이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원자재와 석유, 식량 가격도 끝 간 데 없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엔 정부가 전력 수급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 우리나라는 석유 소비에서 세계 7위이고, 세계 4위 석유 수입국이다.

 

사진_에너지란 무엇인가ㅣ바츨라프 스밀 지음ㅣ윤순진 옮김ㅣ삼천리 펴냄.jpg 에너지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의 문제다. 21세기 들어 빈곤과 인구 문제, 식량과 물 부족, 금융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인 도전과 위협에 직면하면서 에너지의 중요성은 하루가 다르게 부각되고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바츨라프 스밀은 앞날을 성급하게 예측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에너지란 무엇인가>에서 인류가 에너지와 함께 해 온 역사,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대량으로 사용하게 된 근대사회의 에너지 이용과 세계적 확산, 현대사회의 일상적 삶과 이어져 있는 에너지 이용, 미래의 에너지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정부와 기업은 앞 다퉈 정책과 상품 마케팅의 아이콘으로 에너지를 등장시켰고, 신문과 방송도 굵직한 기획물이나 환경 다큐멘터리를 양산하면서 ‘에너지 신드롬’에 편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본질은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을 강조하는 녹색의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소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산업구조와 대량생산 체제, 나아가 역사 문화적 경험과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 지구적인 에너지 생산과 수송, 국제관계와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지역 간 계급 간 ‘에너지 불평등’의 문제도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문제가 개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에너지에 무관심하고 무지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측면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즉, 에너지의 생산과 유통, 소비, 폐기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에너지 가격이나 에너지의 생산지와 소비지의 이원화, 에너지에 대한 교양 교육의 부족 등을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선 개인 차원에서 에너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이해를 기초로 인식과 행위를 변화시켜 나감과 동시에 이러한 개인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지은이는 흔히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되고 있는 에너지가 어떤 다양한 형상을 띠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에너지원에 따라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물리학과 지구과학, 생물학, 화학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에너지의 자연과학적 측면을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또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인류 역사의 시간 축을 따라 일상적인 삶의 영역 안에서 어떤 에너지가 어떻게 이용돼 왔는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또한 에너지라는 용어가 어떻게 잘못 이해되고 있는지, 에너지와 우리 일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러한 인간의 에너지 이용이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밟아서 이뤄져 왔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에너지의 형태를 크게 열(열에너지), 운동(운동 또는 기계적 에너지), 빛(전자기 에너지), 연료와 식료품의 화학에너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에서부터 수력, 풍력, 태양, 바이오매스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전환의 원리와 효율을 비교해 보여 준다. 아울러 음식물 섭취에서부터 가전제품과 자동차, 갖가지 상품에 포함돼 있는 에너지 비용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에너지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 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국가별·지역별 에너지 사용량과 경제성장률을 다각도로 비교해 에너지 수요와 경제성장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꼭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또 수소는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 전달자일 뿐이며 이러한 수소를 근간으로 한 수소 경제는 결코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실과 요즘 유행처럼 진행되고 있는 탄소 포집과 저장 또한 얼마나 한계가 많은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이기 위해 바다에 철을 뿌려서 이산화탄소의 용해를 높이는 일이 얼마나 부모하고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인지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안적인 접근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심각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화석연료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다지만 인류는 당분간 화석연료를 계속 태우게 될 전망이다. 방생한 온실기체를 흡수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핵에너지를 소생시킬 수도 있으며, 태양, 바람, 물을 비롯한 재생가능 에너지를 점점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대규모로 상업적으로 채택하기에는 아직은 준비돼 있지 않고, 어떤 것도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모두가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제각기 가지고 있다.

 

지은이는 그러나 오늘날 떠오르는 에너지 쟁점에 관해 대체로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인류 역사와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다음과 같은 판단이다. “역사는 인류의 일련의 독창성이 멈출 것 같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자원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도전은 감당할 만한 것이다. 진화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를 보면 인류가 변화를 다루는 데 특별하게 적응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창의성과 발명, 혁신의 과거 기록이 또 다른 꽤 획기적인 에너지 전환이 다음 몇 세대 안에 순조롭게 일어날 것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우리가 성공할 가능성이 절반보다는 훨씬 더 높아 내기를 거는 데 좋은 기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