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가 최우선되는 산업화 시대. 환경오염과 천연자원 고갈, 기후변화, 동식물 멸종, 신종 전염병 등 생태계 파괴로 나타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뉴스를 통해 보도된다. 한편으론 친환경, 저탄소, 유기농, 녹색성장과 같이 산업화 논리의 겉포장만 바꾼 신조 경제용어가 판치는 세상이다. 환경문제조차 어느새 자본에 포획돼 ‘자연의 상품화’ 또는 ‘자연의 자본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_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전소영, 알마.jpg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전소영, 알마.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에 찍힌 하나의 오점에 불과한 걸까?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의 지은이 제이 그리피스는 “오히려 인간의 영혼은 야생성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현대 문명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이 유년기부터 잘 훈련되고 길들여졌을 뿐이다. 냉난방기가 끊임없이 가볍게 돌아가고, 창문은 영구히 닫힌 이 클로로포름의 세계에서 젊은이들에게 세속적 성공과 조심스러운 삶을 가르치는 훈련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한 학기에서 다음 학기로, 졸업 후 취업과 결혼으로, 은퇴와 연금 생활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정치적으로 볼 때 우파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험하려 들지 않는다. 격렬한 감정은 비위생적인 세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야생성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 예술가와 질풍노도의 사춘기 청소년에게, 배낭을 멘 여행자와 피곤에 지친 얼굴을 한 양복 입은 신사에게, 집시와 익살광대에게, 모두의 영혼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자연의 힘이다. 다만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따름이다.

 

“이 여행은 길을 잃으면서 시작됐다”

 

원시의 자유를 찾아 지도 바깥으로 모험을 떠나는 지은이는 초록의 식물과 언어로 뒤얽힌 아마존 숲과 안데스산맥, 캐나다의 작은 에스키모 거주지, 밤겨울과 낮여름 그리고 가을의 황혼으로 둘러싸인 북극의 빙하,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 마을과 심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모래사막, 웨스트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을 방랑한다.

 

또한 가장 위대한 야생의 땅인 인간의 정신을 탐색한다. 지은이는 인류와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하고 관능적인 관계를 시적으로 고찰하며, 서구 문명과 소비자 문화, 대기업과 방위산업에 의해 파괴돼가는 자연의 참혹한 현장을 증언한다. 시간, 돈, 에너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완성한 이 기록은 특별한 오디세이아다. 이 책은 독창적인 여행담인 동시에 생명의 본질인 야생성에 대한 선언문이다.

 

지은이의 목소리는 대담하고 아름다우며 엄격하고 때때로 정치적인 색채를 띤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우려면, 자유의 관념과 자유가 구현되는 현실의 장소 모두가 자유로워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자연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광산과 도로 건설, 벌채로 난도질당한 야생의 자연을 보며,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사회의 맨 밑바닥 계층으로 슬럼가에 버려진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지은이는 분노한다. 미접촉 부족에게 신종 전염병을 퍼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찾아가는 탐험가들이나, 북극이나 사막과 같은 대자연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미국과 유럽의 작가들에게 분개한다. 또 야생에서 생기 넘치는 삶을 살던 원주민을 가정주부와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피고용인으로, 유럽과 미국을 선호하는 충실한 소비자가 되도록 길들이는 선교사들을 비난한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를 망가뜨리고 있는 지독한 수동성을 거부하고, 읽는 이 모두에게 자연을 지키기 위한 현장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야생의 자연’은 종종 ‘황무지’와 비슷한 말로 쓰인다. 지은이에 따르면, 이 두 단어는 비슷한 말이기보다는 반대말이다. 아마존에서 유럽인들이 벌인 살인과 멸종, 벌채, 토지 강탈 등의 역사는 자연을 파괴해 생명이 깃들지 않는 황무지로 해체시켰다.

 

“도끼로 나무를 찍어냈으니 말 그대로 황무지다. 또한 가난을 인식하게 됐으니 사회적 황무지이기도 하다.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인식하게 됐으니 감정적 황무지고,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고 거울의 세계에 갇혔으니 개념적 황무지며, 동물이 멸종될 때까지 사냥됐으니 자연적 황무지다. 질병과 알코올중독이 만연한 육체적 황무지고, 땅과의 관계가 짓밟힌 영적 황무지며, 앎에 대한 주술사적인 방식이 파괴된 인식론적 황무지다.” 숲과 강, 바다와 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에 대한 폭행인 것이다.

 

지은이는 파괴적인 현대 문명과 다르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문화를 통해 자연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한다. 원주민의 신화와 마법, 전설과 주술 속에는 생태학적 진실과 비착취적 자원 이용에 대한 많은 규칙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유산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과 다른 원주민들은 고대 그리스보다 수세대 전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해왔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개념을 생태민주주의적 지혜로 확장시켰다. 원주민들은 다른 방식의 앎, 다른 방식의 말하기를 인정하고 모든 동물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권리를 주었으며,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자연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모형이며, 꽃가루의 의견이 중요하고 딱정벌레에게 투표권이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는 궁극적인 국회다.

 

지은이는 단순히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상실한 유년기를 보상받으려는 듯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거나, 일부 환경운동가들처럼 연약한 처녀지를 보호하려는 기사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존 사람들이 숲을 거울로 삼듯, 자연을 인간에게서 분리시키는 거울에 우리를 비춰보는 대신에 자연을 거울로 삼아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파괴된 아마존, 녹아가는 북극은 현대 세계의 끔찍한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나 다름이 없다.

 

이 책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자연 속에서 다른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독창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이고 생태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