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데일리> “상상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과 상상의 틈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거부하는 상황은 상상 속에서조차 실현되기 어렵다. 상상의 공간은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늘 현실의 상투성 바로 옆에 놓여 있다.”

 

최고의 인재를 가리는 첫 번째 기준으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 창의성)’를 꼽는 세상이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은 물론 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제 창의성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상상목공소> 김진송 지음, 톨 펴냄.


천재들의 창의성의 비밀을 밝힌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EQ를 개발하는 창의력 학습법이 유치원의 필수과목이 됐다. 취업면접을 볼 때도 이목을 끄는 스펙과 더불어 남다른 창의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자기만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정작 명문대에 들어가는 데 EQ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하기 힘들고, 천재가 아닌 이상 천재의 비밀을 알더라도 흉내 내기 어려우며, 회사에 입사해서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직장인이 되고 나면 창의력은 먼 나라 이야기가 돼버린다.

 

어쩌면 이 시대가 원하는 크리에이티브는 단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력이거나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을 위한 수단 또는 예술적 창작물로서의 독창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거나 즐겁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근대가 노동자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1의 가치로 여겼다면, 21세기는 ‘창의성’을 생산성과 효율성보다 우위에 놓는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므로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통합된 능력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물질의 속성이 갖는 제약을 어떻게 넘어서는가의 문제" 

 

뛰어난 작업은 개인에 의해 촉발되지만 이를 위해 축적된 문화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 없이는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움직이는 인형, 그것이 발현하는 미학은 기계적인 상상력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 시대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상목공소>는 우선 ‘움직인형’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나 설명을 통해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움직인형이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다. 하지만 전기나 배터리로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아니라 백퍼센트 수동식, 아날로그 인형이다. 


하부에는 나무로 깍은 톱니바퀴와 강선들로 이뤄진 기계장치가 있고, 거기에 연결된 손잡이를 돌리면 상부에 있는 나무 인형이 일정한 ‘스토리’에 따라 순차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목수인 지은이 김진송은 이 ‘움직인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때로 물질의 한계에, 때로는 기계장치 자체의 한계에, 때로는 서사의 한계에 부딪친다. 그리고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상상력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지은이는 바로 이러한 경험과 관찰에서 나온 사유를 다시 사색한다. 


물질의 속성이란 상상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명제를 비롯해 △과학과 기술이 상상력을 어떻게 증폭시키거나 제한할까 △우리는 왜 자연을 관찰해야 할까 △언어와 이미지는 얼마나 상호보완적이며 동시에 상호 충돌할까 △반복과 경험과 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일상성과 상투성은 어떻게 상상력을 억압할까 △독창적인 상상력을 수용하는 데 상투성은 얼마나 필요불가결할까 △이해를 위한 상상력과 해석을 위한 상상력 그리고 창조를 위한 상상력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등에 적용한다.

  

이러한 사색으로부터 지은이는 자연지식과 경험지식, 이론지식이 제각각 자기 틀 안에서만 맴돈다면 상상은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자신의 천적의 천적을 모사한 벌레의 의태. 과학은 이를 가리켜 우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의식적 노력이 아니라 ‘우연’이었다고. 그러나 타자의 시각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벌레의 변태야말로 상상의 극점이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나무속에서 펄프를 갉아먹으며 돌아다니는 벌레처럼,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뚫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과학과 객관이라는 명분으로 지식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한, 진정한 상상의 다채로움은 그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잡다하고 총체적인 경험을 통해 사물을 관통하는 원리와 이치를 파악하는 격물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창의적 인간이란 학문적이거나 언어적인 지식의 형태뿐 아니라 감각과 경험의 형태로 자유롭게 다른 분야로 이동할 수 있는 상상력의 소유자”라고 결론내린다.


한주연기자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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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진송 지음
출판사
| 2011-03-2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시대가 바라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란?모든 감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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