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든든하게 가족을 지킨 아버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에 관한 사연은 다양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전 세계 70억 명의 가슴 속에는 70억 가지 모습의 아버지가 있다. 그 중엔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진 무게와 따뜻함은 인생을 살아가는 큰 힘이 돼 준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ㅣ케니 켐프 지음ㅣ이은선 옮김ㅣ이콘 펴냄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아버지의 삶과 청춘, 꿈과 죽음을 서술하고 있다. 지은이 케니 켐프는 아버지와 함께한 아름다운 기억을 더듬어 살핀다.

 

특이하게도 각 장은 청사진, 페인트붓, 줄자, 톱 등 아버지가 사용했던 공구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에 걸맞은 한 줄의 전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선물이자 독자에게 주는 교훈이다.

 

:::아버지가 목재 하치장에서 집어든 순간부터 마지막 한 조각이 내 손에 쥐여진 30년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합판이 거친 진화과정이 모조리 떠올랐다. 그 묵직함을 느끼는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정말 저세상으로 떠났고, 오래돼서 낡은 물건 속에서 새롭고 쓸모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도 아버지와 더불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 있어 합판 조각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었다. 여행 때 쓸 수 있는 상자였고, 2층 침대였고, 기차 세트 받침이었고, 서랍장이었다. (…) 나는 자신의 진가를 몰랐던 한 남자의 위대함을 침묵으로 유창하게 증언하는 초록색 합판 조각을 들고 서 있었다.:::

 

지은이 아버지의 직업은 약사였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은 작업실인 차고였고, 목수의 일을 자처했다. 하찮은 잡동사니라도 아버지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물건으로 새로 태어났다. 가족을 위한 만능의 목수이자 위대한 발명가였던 것이다.

 

지은이는 루게릭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가족을 위한 물건들을 끊임없이 탄생시켰던 ‘차고’라는 공간은 마치 추억을 되새기는 마법 상자와도 같았다.

 

지은이는 회상한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 곁에 두고 싶은 그런 분이었다.” 어린 시절, 마당에 지붕 있는 테라스를 만들던 아버지는 우뚝 선 나무를 자를 수 없다며 널빤지로 만든 지붕에 구멍을 뚫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며 아낄 줄 알았다. 아들을 위해 직접 차를 고쳐주는 대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아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만들었다. 또 직장에서 당신 자신을 무시하고 일부러 어려움에 빠뜨린 사람에게 한 마디 저항도 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했다. 자신을 해한 상대방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할 만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후에도 불편한 몸으로 과테말라로 건너가 봉사활동을 하고 두려움을 억누르며 병을 공부하는 등 불행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했어도 진정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었다. 투병 와중에도 아버지는 안락사를 택하는 많은 루게릭병 환자를 바라보며 그것이 자신이 선택할 길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고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기도하는 데 썼다. 진정으로 맞서야 할 일에는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 용기를 가진 사나이였던 것이다.

 

자신의 진가를 몰랐던 아버지, 누구보다 뜨겁게 생을 살다간 아버지,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지은이는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버지는 백 마디 말로써가 아니라 당신의 신념과 행동으로써 귀한 가치를 보여준 것”이라며 “인생의 구석구석 사소한 것들의 진가를 발견해내고, 소매를 걷어 고장난 부분을 고치고, 쓸모 있는 가치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던 아버지. 그는 누구보다 위대한 목수였다”고 술회한다. [출처=지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