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서 모든 것에서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풍경, 하늘, 타인의 얼굴에서는 물론이고 우리가 창조해낸 이미지와 글에서도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려 한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이자 저명한 작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이 전자책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독서의 즐거움과 위안에 대해 쓴 39편의 글을 모았다. 그는 <책 읽는 사람들>에서 요나와 호메로스, 단테저자가 아닌 <신곡>의 화자, 피노키오, 돈키호테와 같은 문학 속 인물은 물론 보르헤스에서부터 체 게바라에 이르는 다양한 실제 인물의 삶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오늘날 예견되는 ‘독서의 종말’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탓이 아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책 읽는 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책 읽는 사람들, 알베르토 망구엘, 강주헌, 교보문고



텍스트를 두루마리처럼 ‘스크롤’하며, 내가 원하면 별도의 창을 띄워 다른 부분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모니터가 과거 선배들의 특징을 온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두루마리는 한눈에 텍스트 전체 분량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모니터로는 불가능하다. 또 여러 창을 띄워놓더라도 코덱스(두루마리를 대체한, 오늘날 일반적인 책과 비슷한 형태. 낱장으로 작성된 것들을 묶어 겉표지를 싼다)처럼 페이지를 능란하게 뛰어넘으며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가 검색 기능에서는 훨씬 탁월한 것이 사실이다. 컴퓨터의 찾아가기 기능은 양피지와 종이로 된 책의 귀퉁이가 닳도록 보았던 조상들의 능력을 거의 무한대로 뛰어넘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전자 텍스트를 찾아내서 읽고, 인터넷을 활용해 여러 출처에서 몇 단락씩 잘라내 하나의 글로 재조합하는 데는 뛰어나다. 그렇지만 인쇄된 페이지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비판하며 설명하지는 못한다.


지은이는 전자 텍스트가 접근성이 뛰어나 사용자에게 학습의 어려움을 수반하지 않고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독서의 본질적인 목적이 상실되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수집이라는 역할만이 남는다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전자책의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을 담아, 피할 수 없는 변화임을 언급하면서도 “우리가 소중한 것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책과 공존할 것이고 때로는 책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면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닌 창조적인 독자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에 독서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골라 어떻게 읽어야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이에 대해 독서에 공통적인 정답은 없다고 답한다. 나이와 상황, 지역과 사람, 새로운 해석과 과거의 해석 등 온갖 이유로 환경이 달라지면 책에 대한 느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가 읽든 똑같은 책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어떤 책은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 구경조차 못한 책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갈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돈키호테>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사이아스 레르네르의 지도로 《돈키호테》를 처음 제대로 읽은 후에 나는 온갖 장소에서, 또 온갖 상황에서 이 소설을 시시때때로 읽었다. 유럽에 건너간 직후에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는 1968년의 메아리(저자로 하여금 아르헨티나를 떠나게 만든 쿠테타 사태)가 아직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무엇이라 규정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듯했다. 정직한 기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기사도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남태평양에서 쥐꼬리만 한 돈으로 가정을 꾸려보려 애쓰고, 이질적인 폴리네시아 문화에서 약간 미친 듯한 기분에 젖어 지내며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는 귀족들의 틈에 끼인 가난한 기사가 된 듯했다. 캐나다에서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는 그곳 다문화 사회의 생활방식과 분위기가 매력적이면서도 엉뚱하게 느껴졌다.


‘창조적인 해석’이야말로 독자의 최고 권력이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취향 및 직관과 지식에 따라 책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텍스트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서 이성과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저자의 의도와 가시적인 경계 너머까지 텍스트의 의미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나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독서의 힘인 것이다. 이는 유전적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길러진다는 지은이의 설명이다.


"체계적인 독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누구에게도 인도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책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 여기서 지은이가 소개하는 최고의 방법은 ‘변덕스러운 독서’다. 특히 고전,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품, 검열을 거친 추천도서, 도서관에 보관된 장서들의 경우 그 속에 담긴 동기를 유념하며 읽는다면 유용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상황에 맞는 책이 있으며,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단테의 <신곡>처럼 만만치 않은 고전문학까지, 독자들이 필요로 할 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진짜 도움이 되는 책이다.


또한 이런 책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최고의 안내자는 독자 자신의 변덕이다. 독서의 즐거움과 무계획적 독서의 효용성을 확신해 그때그때 책을 고르는 독자의 변덕이 우리를 최고의 책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순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지은이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이 책과 문학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비롯해 <피노키오의 모험> <보물섬> <돈키호테> <오디세이아> <신곡> 등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작품들을 두루 언급한다. 이 책들은 지은이에게 위로와 해결책을 제시해줬을 뿐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줬던 보르헤스에 대해 재조명한다. 말은 어눌했지만 힘이 있었고,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뛰어난 단편소설들을 쏟아냈던 보르헤스를 소개하며, 그의 단편 중에도 걸작인 <알렙>을 헌정한 에스텔라 칸토와의 관계도 이야기한다.


글 김세헌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상이야기 ⓒ지데일리 gdaily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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